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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趙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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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조경(趙卿)
자(字)여정(汝靜)
시호(諡號)양경(良敬)
생년1374(공민왕 23)
졸년1429(세종 11)
시대조선전기
본관한양(漢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
조인벽(趙仁璧)
정화공주(貞和公主)
공신호좌명공신(佐命功臣)

[상세내용]

조연(趙涓)
1374년(공민왕 23)∼1429년(세종 11). 고려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초명은 경(卿), 자는 여정(汝靜).

부친은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 조인벽(趙仁璧)이며, 모친은 정화공주(貞和公主: 환조의 큰딸)이다.

음보로 산원(散員)이 되고, 1386년(우왕 12) 문과에 급제하였다.

1392년(공양왕 4) 공조총랑(工曹摠郞)을 거쳐, 이해 조선이 건국되자 천우위대장군(千牛衛大將軍)으로서 왕의 의친(懿親)인 까닭에 별운검(別雲劒)이 되어 좌우에서 왕을 호위하였다.

1396년(태조 5) 과의상장군(果毅上將軍)에 승진되고, 이어 중추원우승지동지삼군부사(同知三軍府事)를 역임하였으며, 1400년(정종 2)제2차왕자의 난에 방원(芳遠)을 도와 좌명공신(佐命功臣)4등이 되고 한평군(漢平君)에 봉하여졌다.

1402년(태종 2) 우군총제(右軍摠制)를 거쳐 1404년 도총제를 역임한 뒤 무과회시에 감교관(監校官)이 되어 33인의 무신을 뽑았다.

1407년 겸좌군총제가 된 뒤 이듬해 풍해도관찰사의 왜선 40여척이 나타났다는 보고에 따라 안산부평조전절제사로 파견되었으나 조선의 표류선임이 확인된 뒤늦은 보고에 의하여 돌아왔다. 이해 상호군‧겸좌군도총제‧판의용순금사사(判義勇巡禁司事)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409년 병서강토총제(兵書講討摠制)가 되고, 이듬해 길주도도안무찰리사(吉州道都安撫察理使)로 나가 변방을 침범하는 모련위 야인의 수장 파아손(巴兒孫)올량합(兀良哈)착화(著和) 등을 죽인 뒤에 그들의 근거지까지 쳐부수고 남녀포로 수십인을 포획하여 돌아왔다.

1412년 중군도총제‧겸판사복시사 등을 거쳐 1413년 공조판서지의정부사를 역임하였다.

1416년 판좌군부사가 되고, 이듬해 한평부원군(漢平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1419년(세종 1)세종이 즉위하자 동지총제가 되었다.

1420년 찬성사가 되었으며, 1426년 우의정에 올랐으나, 이해 김도련(金道鍊)으로부터 노비를 뇌물로 받은 죄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황해도 수안에 부처되었다가 곧 방면되었다.

성품이 온순하였으며, 문신이면서 야인정벌에 무공을 떨쳤다. 시호는 양경(良敬)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榜目
新增東國輿地勝覽
燃藜室記述
海東名臣錄
淸選考

[집필자]

이재룡(李載龒)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