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송비(朴松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1A1BE44D1278X0 |
생년 | ?(미상) |
졸년 | 1278(충렬왕 4) |
시대 | 고려후기 |
활동분야 | 군인 > 장군 |
출신지 | 덕원(德原: 지금의 경상북도 盈德) |
공신호 | 위사공신(衛社功臣) |
[상세내용]
박송비(朴松庇)
미상∼1278년(충렬왕 4). 고려 후기의 장군‧재상. 덕원(德原: 지금의 경상북도 盈德) 출신.
1258년(고종 45)에 장군으로 대사성 유경(柳璥), 별장 김준(金俊, 金仁俊) 등과 함께 최의(崔竩)를 살해하여 최씨무신정권을 타도하고 정권을 왕에게 돌렸는데, 그 공으로 대장군이 되고 뒤이어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었다.
1259년에 그의 공으로 내향(內鄕)인 예주(禮州: 지금의 盈德)를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시키고 다시 예주목(禮州牧)으로 승격시켰다.
1262년(원종 3)에 공신당(功臣堂)의 중영(重營)과 함께 벽에 도형되었으며, 그해 동지추밀원사 우산기상시(同知樞密院事右散騎常侍)가 되었다.
1263년에 수사공태자소부좌복야(守司空太子少傅左僕射)가 되었고 1278년(충렬왕 4)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러 죽었다.
성품이 너그럽고 사람들과 공을 다투지 않았다 한다.
1258년(고종 45)에 장군으로 대사성 유경(柳璥), 별장 김준(金俊, 金仁俊) 등과 함께 최의(崔竩)를 살해하여 최씨무신정권을 타도하고 정권을 왕에게 돌렸는데, 그 공으로 대장군이 되고 뒤이어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었다.
1259년에 그의 공으로 내향(內鄕)인 예주(禮州: 지금의 盈德)를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시키고 다시 예주목(禮州牧)으로 승격시켰다.
1262년(원종 3)에 공신당(功臣堂)의 중영(重營)과 함께 벽에 도형되었으며, 그해 동지추밀원사 우산기상시(同知樞密院事右散騎常侍)가 되었다.
1263년에 수사공태자소부좌복야(守司空太子少傅左僕射)가 되었고 1278년(충렬왕 4)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러 죽었다.
성품이 너그럽고 사람들과 공을 다투지 않았다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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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