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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萬宗){2}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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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후기
본관우봉(牛峰)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최이(崔怡)

[상세내용]

만종(萬宗)
생졸년 미상. 고려 고종 때의 승려. 본관은 우봉(牛峰). 속성은 최씨.

고종 때의 무신집정자(武臣執政者)인 최이(崔怡, 崔瑀라고도 부름.)의 서자이며, 최항(崔沆)의 형이다. 최이가 병권(兵權)을 사위인 김약선(金若先)에게 맡기려 하였으나, 두 아들이 반발할까 두려워 모두 송광사(松廣寺)로 보내 승려가 되게 하였다.

그뒤 만종은 선사(禪師)의 승계(僧階)를 제수받고 단속사(斷俗寺)에 거주하였다. 동생 만전(萬全: 최항의 법명)과 더불어 무뢰승(無賴僧)들을 모아 문도(門徒)로 삼고 오직 재물늘이기를 일삼았으며, 또한 문도들도 이름난 절에 분거(分居)하여 관인(官人)이라 사칭하면서 지방관을 능멸하고 인민(人民)을 침탈하는 등 권세를 믿고 횡포한 짓을 함부로 하여 백성들이 모두 원망하였다.

경상주도(慶尙州道)에서는 쌀 50여만석을 민가에 꾸어주고 이식(利息)을 취하여, 가을에 곡식이 익자마자 문도들을 나누어 보내 가혹하게 징수하니 백성들은 가진 것을 그의 문도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조세마저 내지 못할 정도였다.

이에 1240년(고종 27) 안찰사 왕해(王瑎)가 조세납입 전에는 사채를 독촉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만종 형제의 횡포를 저지하였다.

1247년에는 형부상서 박훤(朴暄)경상주도순문사(慶尙州道巡問使) 송국첨(宋國瞻)만종 등의 횡포 때문에 남쪽 지방민들이 소요하여 몽고병이 내침하였을 때 반역할 가능성이 있음을 들어 만종 형제를 소환하고 그 문도들을 처벌하여 민심을 위무하도록 최이에게 건의하였다.

이에 최이어사(御史) 오찬(吳贊)행수(行首) 주영규(朱永珪)를 단속사 등지로 파견하여 만종 등이 쌓아둔 전곡(錢穀)을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고, 문권(文券)을 불사르고, 문도 중에서 못된 짓 하는 자를 잡아가두었다.

그러나 만종만전과 함께 최이에게 하소연하므로, 최이는 후회하고 오히려 부자 사이를 이간하였다 하여, 박훤흑산도(黑山島)로 유배하고 송국첨동경부유수(東京副留守)로 좌천시켰다.

이때 만전은 귀속(歸俗)하여 이름을 최항이라 고쳤으나, 만종은 그대로 있다가 1258년 최의(崔竩)유경(柳璥)김준(金俊) 등에 죽음을 당하여 최씨정권이 몰락한 직후에 토지와 노비를 몰수당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정신(李貞信)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