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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경(鄭仁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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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양렬(襄烈)
생년1237(고종 24)
졸년1305(충렬왕 31)
시대고려후기
본관서산(瑞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신보(鄭臣保)
공신호시종1등공신(侍從一等功臣: 고려사 정인경열전에는 2등공신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세가의 기록을 따름.)
공신호벽상삼한삼중대광 추성정책안사공신(壁上三韓三重大匡推誠定策安社功臣)

[상세내용]

정인경(鄭仁卿)
1237년(고종 24)∼1305년(충렬왕 31). 고려의 문신. 본관은 서산(瑞山). 인주(麟州: 지금의 의주)의 수령을 지낸 정신보(鄭臣保)의 아들이다.

처음 몽고어통역관으로 출발하였으나 고종말 몽고병의 침입 때 종군하여 야습으로 전공을 세워 제교(諸校)에 보임되었다.

1269년(원종 10) 세자(뒤의 충렬왕)가 원나라에 갈 때 시종하였고, 세자가 돌아오다가 파사부(婆娑府)에 이르렀을 때 임연(林衍)의 변(變)을 고하는 자가 있으므로 인주의 수령으로 있던 아버지에게 이를 알려 세자를 다시 원나라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이 공으로 1274년(충렬왕 1)에 시종1등공신(侍從一等功臣: 고려사 정인경열전에는 2등공신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세가의 기록을 따름.)에 올랐다.

또한 그 공으로 그의 고향인 부성현(富城縣)서산군(瑞山郡)으로 승격되었다.

1279년 장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일본원정준비에 홍다구(洪茶丘)가 간섭하지 못하게 할 것을 건의하였고, 1282년 친종장군(親從將軍)으로서 요동(遼東)심양(瀋陽)에 가서 유민(流民)들을 추쇄(推刷)하여 왔으며, 이듬해 대장군으로 요양(遼陽)북경(北京)에 가서 유민들을 추쇄하여 왔고, 1288년에는 상장군에 올랐다.

1290년 동녕부(東寧府)고려에 귀속시키는 데 공을 세워 벼슬이 부지밀직(副知密直)에 오르고, 서북면도지휘사로서 서경유수가 되었다.

1292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랐으나 나라에서 혼인을 금하는 기간을 설정하였는데 이를 어겨 외딴 섬에 유배되었다.

1299년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어 정조사(正朝使)원나라에 다녀왔다.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거쳐 중찬으로 치사하였으며, 벽상삼한삼중대광 추성정책안사공신(壁上三韓三重大匡推誠定策安社功臣)의 호를 받았다.

성품이 정직하고 몽고어에 능하여 통역관으로 이름이 알려져 원나라로부터 무덕장군 정동성이문관(武德將軍征東省理門官)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