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鄭顗)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C758FFFFD1233X0 |
이명(異名) | 정준유(鄭俊儒) |
생년 | ?(미상) |
졸년 | 1233(고종 20)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상세내용]
정의(鄭顗)
미상∼1233년(고종 20). 고려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준유(俊儒).
1217년(고종 4) 거란군이 서경에 침입하자 이 틈을 타 서경인 최광수(崔光秀) 등이 스스로 고구려부흥병마사 금오위섭상장군(高句麗復興兵馬使金吾衛攝上將軍)이라고 칭하며 난을 일으켰다.
이에 분대녹사(分臺錄事)로 일당 8명을 격살시키고 성을 회복하였다. 그 공으로 섭중랑장(攝中郞將)이 되어 내시에 소속되었으며 의관과 안마(鞍馬)를 하사받았다. 이후 여러 번 승진하여 장군‧시랑을 거쳐 대장군이 되었다.
1233년 필현보(畢賢甫)‧홍복원(洪福源) 등이 서경에서 모반하자 선유(宣諭)의 임무를 띠고 서경에 갔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살해되었다.
1217년(고종 4) 거란군이 서경에 침입하자 이 틈을 타 서경인 최광수(崔光秀) 등이 스스로 고구려부흥병마사 금오위섭상장군(高句麗復興兵馬使金吾衛攝上將軍)이라고 칭하며 난을 일으켰다.
이에 분대녹사(分臺錄事)로 일당 8명을 격살시키고 성을 회복하였다. 그 공으로 섭중랑장(攝中郞將)이 되어 내시에 소속되었으며 의관과 안마(鞍馬)를 하사받았다. 이후 여러 번 승진하여 장군‧시랑을 거쳐 대장군이 되었다.
1233년 필현보(畢賢甫)‧홍복원(洪福源) 등이 서경에서 모반하자 선유(宣諭)의 임무를 띠고 서경에 갔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살해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신천식(申千湜)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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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