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홍복원(洪福源)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D64DBCF5C6D0B1206X0
이명(異名)복량(福良)
시호(諡號)충헌(忠憲)
생년1206(희종 2)
졸년1258(고종 45)
시대고려후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변란 > 반역자
홍대순(洪大純)

[상세내용]

홍복원(洪福源)
1206년(희종 2)∼1258년(고종 45). 고려 후기의 부원배(附元輩). 본관은 남양(南陽[唐]). 초명은 복량(福良).

부친은 1218년(고종 5)에 인주도령(麟州都領)으로서 몽고에 투항한 홍대순(洪大純)이며, 아들은 몽고의 관리가 된 다구(茶丘)군상(君祥) 등 7명이고, 사위가 충렬왕 때 충찬치사(中贊致仕)에 오른 장위(張暐)이다.

선대부터 인주(麟州)에 옮겨 살았으며, 1231년 인주의 신기도령(神騎都領)으로 있으면서 몽고가 침략해 오자 편민(編民) 1,500호(戶)를 이끌고 투항하여 고려군민만호(高麗軍民萬戶)를 제수받았고, 이후 몽고의 길잡이가 되어 고려를 침공하는 데 앞장섰다. 몽고가 북계(北界)의 40여성(城)을 함락시킨 뒤에는 이곳에서 진수(鎭守)하고 있었으며, 고려의 항복을 종용하는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1232년 고려의 강화천도에 대한 보복으로 살례탑(撒禮塔)이 침공해왔을 때에도 북계를 근거지로 하면서 이에 협력하였으며, 때마침 살례탑처인성(處仁城: 龍仁)에서 사살당하여 몽고군이 철수하자 북계에 남아 진수하면서 몽고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해에는 서경낭장(西京郞將)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필현보(畢賢甫)와 함께 선유사(宣諭使) 정의(鄭毅) 등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북계병마사(北界兵馬使) 민희(閔曦)에게 토벌되어 필현보가 죽음을 당하자 몽고로 도망해 들어가 요양(遼陽)심양(瀋陽) 등지에 거처하였다.

이때 몽고로부터 관령귀부고려군민장관(管領歸附高麗軍民長官)에 임명되어 전쟁 중에 몽고에 투항하였거나 유망(流亡)해 간 고려인들을 통치하였으며, 이들을 이끌고 몽고의 고려 침략에 합세하여 1235년‧1245년‧1253년‧1254년‧1258년의 다섯 차례에 걸쳐 고려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독로화(禿魯花)로 파견되어 몽고에서 생활하고 있던 영녕공(永寧公) 준(綧)과 귀부 군민에 대한 통치권을 둘러싸고 대립하다가 1258년에 죽음을 당하였다.

뒤에 아들 다구와 군상이 몽고에서 관인으로 출세함으로써 가의대부 심양후(嘉議大夫瀋陽侯)로 증직(贈職)되었고, 그 후손들은 계속해서 요양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면서 고려와 대립하였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元史
新元史
元高麗紀事
洪福源一家와 麗元關係(周采赫, 史學硏究 24, 1974)
元代 遼東地方의 高麗軍民(金九鎭, 李元淳敎授華甲記念史學論叢, 敎學社, 1986)

[집필자]

이익주(李益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