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담지(李湛之)
[상세내용]
이담지(李湛之)
생졸년 미상. 고려 명종‧신종 때의 문인. 자는 청경(淸卿). 본관은 경주(慶州). 좌사(左思) 이중약(李仲若)의 내손(內孫)이다.
가계 및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무인란 이후 임춘(林椿)과 마찬가지로 개경을 벗어나 유락객(流落客)이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중앙에 기반을 둔 귀족출신으로 보인다.
죽림고회(竹林高會)의 한 사람으로 이인로(李仁老) 등과 친하게 지냈으며, 평소 술을 즐겨서 이인로가 술친구로 꼽았다. 죽림고회의 한 사람인 함순(咸淳)과 함께 최충(崔冲)이 설립한 사학인 문헌공도출신으로 여겨지며, 임춘보다 먼저 개경에 돌아와 과거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그에 대한 일반적 호칭이 이유원(李留院)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유원(留院)이라는 하급벼슬을 했음을 알 수 있고, 금나라로 사신을 갔었으며 토적병마서기(討賊兵馬書記)를 지냈다.
이규보(李奎報)의 「논주필사약언(論走筆事略言)」에 이담지가 주필(走筆: 즉흥적으로 써내려가는 한시 창작법)의 창시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는 전하는 것이 없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그와 공부(共賦)한 시를 보면 자신의 시에 대한 자부심과 빈약한 처지에 대한 한탄을 엿볼 수 있다.
가계 및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무인란 이후 임춘(林椿)과 마찬가지로 개경을 벗어나 유락객(流落客)이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중앙에 기반을 둔 귀족출신으로 보인다.
죽림고회(竹林高會)의 한 사람으로 이인로(李仁老) 등과 친하게 지냈으며, 평소 술을 즐겨서 이인로가 술친구로 꼽았다. 죽림고회의 한 사람인 함순(咸淳)과 함께 최충(崔冲)이 설립한 사학인 문헌공도출신으로 여겨지며, 임춘보다 먼저 개경에 돌아와 과거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그에 대한 일반적 호칭이 이유원(李留院)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유원(留院)이라는 하급벼슬을 했음을 알 수 있고, 금나라로 사신을 갔었으며 토적병마서기(討賊兵馬書記)를 지냈다.
이규보(李奎報)의 「논주필사약언(論走筆事略言)」에 이담지가 주필(走筆: 즉흥적으로 써내려가는 한시 창작법)의 창시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는 전하는 것이 없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그와 공부(共賦)한 시를 보면 자신의 시에 대한 자부심과 빈약한 처지에 대한 한탄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東國李相國集
高麗竹林高會硏究(李東歡, 高麗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68)
高麗史節要
東國李相國集
高麗竹林高會硏究(李東歡, 高麗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68)
[집필자]
박노춘(朴魯春)
대표명 | 이담지(李湛之) |
성명 | 이담지(李湛之) |
성명 : "이담지(李湛之)"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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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7-19 | 인물사전의 이중약(李仲若)의 본관을 참고하여 본관을 경주로 함. 그런데 경주이씨 古족보에서는 이중약과 이담지가 보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