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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염(無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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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해동신동(海東神童)
호(號)무주(無住)
시호(諡號)대낭혜(大朗慧)
생년801(애장왕 2)
졸년888(진성여왕 2)
시대통일신라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상세내용]

무염(無染)
801년(애장왕 2)∼888년(진성여왕 2). 승려.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성주산문(聖住山門)의 개산조. 성은 김씨(金氏). 호는 무량(無量) 또는 무주(無住)라고도 한다.

제29대 태종무열왕의 8대손이며, 어려서부터 글을 익혀 9세 때 해동신동(海東神童)이라는 아호를 받았다.

12세에 출가하여 지금의 강원도 양양군 오읍동 설악산 오색석사(五色石寺)에서 법성(法性)의 제자가 되었다. 당나라에서 소승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법성무염에게 한문과 중국어를 가르쳐주었으며, 당나라 유학을 권고하였다.

당시 당나라에서는 화엄학이 크게 성행하였으므로 무염부석사(浮石寺)석징(釋澄)을 찾아가서 『화엄경』을 공부한 뒤,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갔다.

그러나 도중에 풍랑을 만나 배가 흑산도에 기착하여 당나라로 가지 못하였다.

821년(헌덕왕 13) 다시 정조사(正朝使)를 따라 당나라로 가서 성남산(城南山) 지상사(至相寺)의 화엄강석(華嚴講席)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당나라에서는 이미 화엄학보다 선종(禪宗)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그도 불광사(佛光寺)의 여만(如滿)을 찾아가서 선법(禪法)을 물었다. 여만은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이와같은 신라의 젊은이는 본 적이 없다. 뒷날 중국이 선풍(禪風)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중국사람들이 신라로 가서 선법을 물어야 할 것이다.”라고 칭찬하였다.

그뒤 무염마곡산(麻谷山) 보철(寶徹)을 찾아가서 인가를 받아 법맥(法脈)을 이어받고, 중국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고독한 사람, 병고를 겪고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폈다.

20여년 동안 이와같은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하자 그의 이름은 중국 전역에 퍼졌고, 사람들은 그를 동방의 대보살이라고 불렀다.

847년(문성왕 7) 귀국하자 왕자 흔(昕)공주 성주사(聖住寺)에 머무르기를 간청하였다. 그는 이 절을 선문구산의 하나인 성주산문의 본산으로 삼아 40여년 동안 교화하였다.

문성왕헌안왕경문왕헌강왕정강왕진성여왕 등 여섯 왕이 모두 그를 존경하여 법을 물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도를 구하였다. 그는 한때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하여 상주 심묘사(深妙寺)로 옮겨 숨어 살기도 하였다.

또한, 경문왕 때 왕이 사신을 파견하여 궁중으로 모시고자 하였으나, “나를 아는 자는 성주(聖住)를 무주(無住)라 하고, 나를 모르는 자는 무염을 유염(有染)이라고 한다.”고 하면서 사양하였다.

성격은 공손하고 자애로웠으며 손님을 대할 때 귀천을 가리지 않았고, 언제나 다른 승려들과 함께 보리밥을 먹었다. 절에 큰 불사(佛事)가 있을 때 앞장서서 일을 하였고, 평소에도 물을 긷고 나무를 하였다.

89세로 죽었으며, 시호는 대낭혜(大朗慧), 탑호는 백월보광(白月保光)이라 하였다. 탑은 성주산 성주사에 세웠으며, 최치원(崔致遠)이 왕명을 받아 글을 짓고 최인곤(崔仁滾)이 쓴 탑비는 현재 국보 제8호로 지정되어 충청남도 보령군 미산면 성주리에 있다.

제자는 2천여명에 이르렀으며, 그 중 원장(圓藏)영원(靈源)현영(玄影)승량(僧亮)여엄(麗嚴)자인(慈忍) 등이 그의 선풍을 선양하여 성주산문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1293년(충렬왕 19) 천책(天頙)이 지은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는 그의 「무설토론(無舌土論)」이 수록되어 있다. 그는 이 논에서 부처의 교설을 뜻하는 불교와 선종 조사(祖師)들의 도인 조도(祖道)를 구별하였는데, 이와같은 구분은 그에 의해서 최초로 도입되었다.

또한, 말을 매개로 하거나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곧바로 이심전심(以心傳心)하는 것이 조도라고 정의하였고, 청정이나 부정 등의 상대적인 구별을 넘어선 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말을 빌려서 깨끗함과 더러움을 분별하는 불교는 낮은 근기의 중생들을 위해서 쓴 부처의 방편이라고 보았다.

[참고문헌]

祖堂集
景德傳燈錄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朝鮮金石總覽 卷上
宗敎史話(李箕永, 韓國佛敎硏究院, 1978)
新羅時代의 禪思想(韓基斗, 韓國佛敎學 1, 韓國佛敎學會, 1975)

[집필자]

김위석(金渭錫)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