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정(金憲貞)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5CCC815U9999X0 |
이명(異名) | 초노(草奴)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신라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왕실 > 왕족 |
부 | 김예영(金禮英) |
[상세내용]
김헌정(金憲貞)
생졸년 미상. 신라 원성왕의 왕자인 김예영(金禮英)의 아들. 일명 ‘초노(草奴)’라고도 하며, 희강왕의 아버지이다.
807년(애장왕 8) 1월부터 810년(헌덕왕 2) 1월까지 시중을 역임하였으며, 813년경에는 국상(國相), 병부령 겸 수성부령(兵部令兼修城府令)의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뒤 819년 1월 병으로 보행이 불가능하였다고 하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그 직후에 병으로 죽은 듯하다.
837년(희강왕 2)에 희강왕에 의하여 ‘익성대왕(翼成大王)’으로 추봉되었다. 신라 하대에 들어와서는 왕실 및 진골귀족집단 내부에서 혈족관념(血族觀念)의 분지화 경향이 전대에 비하여 더욱 촉진되었다.
그리하여 원성왕계 내부에서도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인겸계(仁謙系)‧예영계(禮英系)의 대립이 있었고, 김예영계내에서도 두 아들인 김헌정과 김균정(金均貞) 양 계보의 알력이 있었다.
그래서 희강왕 이후의 왕위계승은 헌정계와 균정계의 연합과 대립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807년(애장왕 8) 1월부터 810년(헌덕왕 2) 1월까지 시중을 역임하였으며, 813년경에는 국상(國相), 병부령 겸 수성부령(兵部令兼修城府令)의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뒤 819년 1월 병으로 보행이 불가능하였다고 하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그 직후에 병으로 죽은 듯하다.
837년(희강왕 2)에 희강왕에 의하여 ‘익성대왕(翼成大王)’으로 추봉되었다. 신라 하대에 들어와서는 왕실 및 진골귀족집단 내부에서 혈족관념(血族觀念)의 분지화 경향이 전대에 비하여 더욱 촉진되었다.
그리하여 원성왕계 내부에서도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인겸계(仁謙系)‧예영계(禮英系)의 대립이 있었고, 김예영계내에서도 두 아들인 김헌정과 김균정(金均貞) 양 계보의 알력이 있었다.
그래서 희강왕 이후의 왕위계승은 헌정계와 균정계의 연합과 대립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羅元聖王系의 王位交替(吳星, 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79)
新羅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李基東, 歷史學報 85, 1980)
新羅下代 均貞系의 王位繼承과 金陽(尹炳喜, 歷史學報 96, 1982)
三國遺事
新羅元聖王系의 王位交替(吳星, 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79)
新羅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李基東, 歷史學報 85, 1980)
新羅下代 均貞系의 王位繼承과 金陽(尹炳喜, 歷史學報 96, 1982)
[집필자]
정중환(丁仲煥)
대표명 | 김헌정(金憲貞) |
명 | 헌정(憲貞) |
명 : "헌정(憲貞)"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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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