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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신(福信)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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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663(고구려: 보장왕 22/신라: 문무왕 3)
시대백제
활동분야귀화‧유민 > 부흥운동가

[상세내용]

복신(福信)
미상∼663년. 백제부흥운동가. 백제 무왕의 조카인 동시에 의자왕의 사촌동생.

660년(의자왕 20) 사비성(泗沘城)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되고 의자왕신라에 항복하게 되자, 도침(道琛)과 함께 주류성(周留城: 현재의 韓山)을 근거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왕자 부여 풍(扶餘豊)을 왕으로 추대하는 한편, 일본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동시에 서북부지방 백제유민들의 호응을 얻어 한때 사비성까지 쳐들어가는 성과를 얻었다.

당나라 장수 유인원(劉仁願)이 지키는 사비성을 포위하자, 당나라에서는 유인궤(劉仁軌)를 급히 파견하여 구원하게 하였다. 그 결과 백제부흥군의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복신은 임존성(任存城)으로 퇴진하였다.

이때 복신은 “신라가 백제사람들은 다 죽이고 땅은 신라에 주기로 약속하였다 하니,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싸우기나 하자.”는 격문을 내걸고 백제유민들의 호응 아래 여러 차례 나당연합군을 격파하였다.

복신을 주축으로 하는 백제부흥군은 신라당나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는 틈을 타서 옹산성(甕山城: 지금의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에 있던 계족산성)‧사정성(沙井城: 지금의 대전시 사정동)‧진현성(眞峴城) 등을 공격하여 이를 탈환하였다. 그밖에 신라군이 금강상류를 통하여 내려보내는 군량수송로를 차단하니 나당연합군은 한때 곤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복신도침과 반목하여 도침을 죽이는 한편, 자기의 세력을 믿고 장차 부여 풍까지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거짓 병을 핑계로 누워 있다가, 부여 풍이 문병오는 것을 기다려 잡아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아챈 부여 풍이 먼저 부하들을 이끌고 가서 복신을 죽였다.

이와같은 백제부흥군 지도부의 분열로 인하여 전후 4년에 걸친 백제부흥운동은 좌절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舊唐書
新唐書
日本書紀
韓國金石全文(許興植, 亞細亞文化社, 1984)

[집필자]

성주탁(成周鐸)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