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로(尹衡老)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D615B85CU9999X0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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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윤탄(尹坦) |
공신호 | 정국공신(靖國功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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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윤형로(尹衡老)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동지의금부사 윤탄(尹坦)의 아들이며,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는 그의 사촌누이동생이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종 때 여러 지방의 수령을 지내면서 치적을 쌓았고 뒤에 지평이 되었다. 연산군 때에 이르러 왕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1506년(연산군 12)에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晉城大君: 뒤의 중종)을 옹립하기 위하여 반정을 도모할 때 여기에 가담하여 거사당일 진성대군의 사저에 나아가 사태의 전말을 고하여 시위하였으며, 경복궁에 가서 대비 정현왕후에게 이 사실을 알려 거사를 성공시켰다.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영양군(鈴陽君)에 봉하여졌으며, 1507년에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동지의금부사 윤탄(尹坦)의 아들이며,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는 그의 사촌누이동생이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종 때 여러 지방의 수령을 지내면서 치적을 쌓았고 뒤에 지평이 되었다. 연산군 때에 이르러 왕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1506년(연산군 12)에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晉城大君: 뒤의 중종)을 옹립하기 위하여 반정을 도모할 때 여기에 가담하여 거사당일 진성대군의 사저에 나아가 사태의 전말을 고하여 시위하였으며, 경복궁에 가서 대비 정현왕후에게 이 사실을 알려 거사를 성공시켰다.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영양군(鈴陽君)에 봉하여졌으며, 1507년에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中宗實錄
燃藜室記述
中宗實錄
燃藜室記述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봉호 : "영양군(鈴陽君)"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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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