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강(朴繼姜)
[상세내용]
박계강(朴繼姜)
생졸년 미상. 중종 때부터 선조 때 사이에 활동하였던 여항시인(閭巷詩人). 호는 시은(市隱).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의하면 원래 부유한 집안출신으로 40대까지 문자를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천례(賤隷)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수모를 당하자, 즉시 발분하여 학업에 열중한 나머지 수년 만에 문명(文名)을 드날리게 되었으므로 사십문장(四十文章)이라 일컬어졌다고 한다.
특히,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이었던 김정(金淨)과 가까이 지내며 시문(詩文)을 창수(唱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여항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유희경(劉希慶)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었던 풍월향도시인(風月香徒詩人)의 한 사람이었다.
작품으로는 「증인(贈人)」 등 3수의 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의하면 원래 부유한 집안출신으로 40대까지 문자를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천례(賤隷)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수모를 당하자, 즉시 발분하여 학업에 열중한 나머지 수년 만에 문명(文名)을 드날리게 되었으므로 사십문장(四十文章)이라 일컬어졌다고 한다.
특히,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이었던 김정(金淨)과 가까이 지내며 시문(詩文)을 창수(唱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여항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유희경(劉希慶)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었던 풍월향도시인(風月香徒詩人)의 한 사람이었다.
작품으로는 「증인(贈人)」 등 3수의 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里鄕見聞錄(劉在建)
昭代風謠(高時彦編)
昭代風謠(高時彦編)
[집필자]
강명관(姜明官)
명 : "계강(繼姜)"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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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