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성(李大成)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300C131B1651X0 |
자(字) | 시숙(時叔) |
호(號) | 삼취헌(三翠軒) |
생년 | 1651(효종 2) |
졸년 | 1718(숙종 4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정영(李正英) |
외조부 | 유기선(柳基善)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대성(李大成)
1651년(효종 2)∼1718년(숙종 4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시숙(時叔), 호는 삼취헌(三翠軒). 판중추부사 이정영(李正英)의 아들이며, 모친은 유기선(柳基善)의 딸이다.
1682년(숙종 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문음(門蔭)으로 입사하여 호조좌랑에 이르렀다.
169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곧 지평‧사서를 거쳐 1702년 정언(正言)이 되었다.
이때 붕당의 폐해와 관련하여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이로 인하여 홍문관 관원들의 탄핵을 받았고, 재상들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3년 뒤 재기용되어 문학에 임명된 이래 지평을 거쳐 홍문록에 올랐고, 수찬‧부교리‧지평‧부수찬 등의 언관을 역임하다가 1708년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이조참의‧대사성‧이조참판‧병조참판 등 청요직(淸要職)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717년 사은 겸 동지부사(謝恩兼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다음해 사직으로 있다가 죽었다.
1682년(숙종 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문음(門蔭)으로 입사하여 호조좌랑에 이르렀다.
169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곧 지평‧사서를 거쳐 1702년 정언(正言)이 되었다.
이때 붕당의 폐해와 관련하여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이로 인하여 홍문관 관원들의 탄핵을 받았고, 재상들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3년 뒤 재기용되어 문학에 임명된 이래 지평을 거쳐 홍문록에 올랐고, 수찬‧부교리‧지평‧부수찬 등의 언관을 역임하다가 1708년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이조참의‧대사성‧이조참판‧병조참판 등 청요직(淸要職)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717년 사은 겸 동지부사(謝恩兼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다음해 사직으로 있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명 : "대성(大成)"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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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