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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金聲久)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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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덕휴(德休)
호(號)해촌(海村)
생년1641(인조 19)
졸년1707(숙종 33)
시대조선중기
본관의성(義城)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추길(金秋吉)
출신지의성
저서『팔오헌집』

[상세내용]

김성구(金聲久)
1641년(인조 19)∼1707년(숙종 3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휴(德休), 호는 팔오헌(八吾軒) 또는 해촌(海村). 의성 출신. 부친은 용양위부호군 김추길(金秋吉)이다.

1662년(현종 3) 사마시를 거쳐 166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전적무안현감직강지평수찬정언 등을 지냈다. 수찬 재직시 국가재정에 관하여 각사(各司)의 비용과 내탕비(內帑費)를 줄여 진휼비에 보충하는 일과, 경사(經史)를 열심히 강론하여 치도(治道)를 구하는 일 등 수천언의 상소를 올렸고, 정언 재직시에는 당시 형조판서 남구만(南九萬)이 진휼비를 탕감했다고 고발하였다.

1679년(숙종 5) 장령 재직시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나누어지면서 논핵(論劾)되어 정의(旌義: 지금의 제주도) 등의 벽지로 쫓겨났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복관되어 대사성집의헌납좌승지강원도관찰사병조참지 등을 거쳐 호조참의를 역임하였다.

그뒤 갑술환국으로 노론이 득세하자 향촌에 물러나서 서사(書史)를 즐기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는 관직생활에 있어서 공사를 분명히 하였다.

안동백록사(柏麓祠)에 제향되었고, 저서로는 『팔오헌집』이 있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肅宗實錄
八吾軒集
嶺南人物考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대표명김성구(金聲久)
성명김성구(金聲久)

성명 : "김성구(金聲久)"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郯述v04金聲久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