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李球){2}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74AD6CFFFFB1620X0 |
자(字) | 대옥(大玉) |
호(號) | 은와(隱窩) |
생년 | 1620(광해군 12) |
졸년 | 1684(숙종 1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의(全義)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지영(李之英)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구(李球)
1620년(광해군 12)∼1684년(숙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옥(大玉), 호는 은와(隱窩). 이지영(李之英)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재주가 있어 손처눌(孫處訥)의 문하생이 되었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를 거쳐 1652년(효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전적이 되어 양사에 재직하였다.
그뒤 1663년(현종 4)에 순천부사가 되었으나 간부(姦婦)의 살부문제(殺夫問題)가 일어나 파직당하였다.
그뒤 다시 등용되어 전적‧사간을 거쳐 1679년(숙종 5)에 지평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길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윤휴(尹鑴)가 사사(賜死)되자 그 부당함을 말하고 글로 쓰기도 하는 등 호역(護逆)하였다는 이유로 장흥에 유배되었다가 1683년에 풀려나와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던 중 죽었다. 대사간에 추증되었으며, 『전성세고(全城世稿)』에 약간의 시문이 전한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를 거쳐 1652년(효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전적이 되어 양사에 재직하였다.
그뒤 1663년(현종 4)에 순천부사가 되었으나 간부(姦婦)의 살부문제(殺夫問題)가 일어나 파직당하였다.
그뒤 다시 등용되어 전적‧사간을 거쳐 1679년(숙종 5)에 지평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길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윤휴(尹鑴)가 사사(賜死)되자 그 부당함을 말하고 글로 쓰기도 하는 등 호역(護逆)하였다는 이유로 장흥에 유배되었다가 1683년에 풀려나와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던 중 죽었다. 대사간에 추증되었으며, 『전성세고(全城世稿)』에 약간의 시문이 전한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肅宗實錄
國朝榜目
全城世稿
肅宗實錄
國朝榜目
全城世稿
[집필자]
손승철(孫承喆)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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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