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처눌(孫處訥)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90CC98B20CB1553X0 |
자(字) | 기도(幾道) |
호(號) | 모당(慕堂) |
생년 | 1553(명종 8) |
졸년 | 1634(인조 1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조부 | 손치운(孫致雲) |
출신지 | 성주(星州) |

[상세내용]
손처눌(孫處訥)
1553년(명종 8)∼1634년(인조 12). 조선 중기의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 현감 손치운(孫致雲)의 손자이다. 성주(星州) 출신.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장현광(張顯光)‧서사원(徐思遠)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군과 투쟁하려다가 친상을 연이어 당하여 실행하지 못하였다.
난 후 향교의 재건에 앞장서서 후진양성에 노력하였고, 정인홍(鄭仁弘)의 이황(李滉)배척에 대항하여 척사부정(斥邪扶正)의 글을 지어 도내사림을 규합하기도 하였다.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장현광(張顯光)‧서사원(徐思遠)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군과 투쟁하려다가 친상을 연이어 당하여 실행하지 못하였다.
난 후 향교의 재건에 앞장서서 후진양성에 노력하였고, 정인홍(鄭仁弘)의 이황(李滉)배척에 대항하여 척사부정(斥邪扶正)의 글을 지어 도내사림을 규합하기도 하였다.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燃藜室記述
嶺南人物考
大丘邑誌
嶺南人物考
大丘邑誌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성명 : "손처눌(孫處訥)"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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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