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신(沈友信)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CC6B0C2E0B1544X0 |
자(字) | 공택(公擇) |
생년 | 1544(중종 39) |
졸년 | 1593(선조 2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청송(靑松)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images/showMeta.gif)
부 | 심수(沈鐩) |
5대조 | 심회(沈澮) |
![](/images/hideMeta.gif)
[상세내용]
심우신(沈友信)
1544년(중종 39)∼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공택(公擇). 영의정 심회(沈澮)의 5대손이며 곡산부사 심수(沈鐩)의 아들이고, 서인의 영수였던 심의겸(沈義謙)이 6촌형이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합격, 선전관을 역임하고 군기시첨정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정리하여 의병을 모집, 수원성에서 적병의 진격을 막았다.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을 만나 사생을 같이 하기로 맹세하고, 함께 진주성으로 들어가 힘을 합쳐 이를 수호하였다.
성이 함락되어 김천일이 먼저 전사하자,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가 화살이 다하자 북향재배하고 남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뒤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전라도 영광의 장천사(長川祠)에 배향되었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합격, 선전관을 역임하고 군기시첨정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정리하여 의병을 모집, 수원성에서 적병의 진격을 막았다.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을 만나 사생을 같이 하기로 맹세하고, 함께 진주성으로 들어가 힘을 합쳐 이를 수호하였다.
성이 함락되어 김천일이 먼저 전사하자,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가 화살이 다하자 북향재배하고 남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뒤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전라도 영광의 장천사(長川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韓國系行譜
韓國系行譜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대표명 | 심우신(沈友信) |
성명 | 심우신(沈友信) |
성명 : "심우신(沈友信)"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