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鄭昌)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CC3DFFFFD1463X0 |
호(號) | 죽계(竹溪) |
생년 | ?(미상) |
졸년 | 1463(세조 9)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초계(草溪)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효순(鄭孝恂)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창(鄭昌)
미상∼1463년(세조 9).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호는 죽계(竹溪). 정효순(鄭孝恂)의 아들이다.
1432년(세종 14)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438년 식년시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을 거쳐 집현전교리가 되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과 더불어 일세에 그 이름을 떨쳤다.
단종초 시사(時事)의 어려움을 예견하고 일찍이 물러설 것을 결심하고 외직을 자청하여 진천군수가 되었다. 지방의 수령으로 청렴하고 처사가 공명정대하였다.
세조가 왕위를 선양받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으며, 성균관직강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432년(세종 14)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438년 식년시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을 거쳐 집현전교리가 되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과 더불어 일세에 그 이름을 떨쳤다.
단종초 시사(時事)의 어려움을 예견하고 일찍이 물러설 것을 결심하고 외직을 자청하여 진천군수가 되었다. 지방의 수령으로 청렴하고 처사가 공명정대하였다.
세조가 왕위를 선양받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으며, 성균관직강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참고문헌]
誌狀輯略
[집필자]
이재호(李載琥)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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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