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중엄(成重淹)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31C911C5C4B1474X0 |
자(字) | 계문(季文) |
호(號) | 청호(晴湖) |
생년 | 1474(성종 5) |
졸년 | 1504(연산군 10)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창녕(昌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성팽로(成彭老) |

[상세내용]
성중엄(成重淹)
1474년(성종 5)∼1504년(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계문(季文), 호는 청호(晴湖).
좌찬성 성억(成抑)의 후손이며 성팽로(成彭老)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났고, 생원‧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할 때에는 하루에 시 30여편을 지어 함께 공부하던 김일손(金馹孫)‧조위(曺偉) 등을 놀라게 하였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497년(연산군 3) 홍문관저작으로 승진한 후 박사에 이르러 경연사경(經筵司經) 및 춘추관사관을 겸하여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 때 경연관으로서 명현들의 무고한 화를 변호하다가 인산(麟山)에 유배되었다.
그뒤 1500년 하동으로 이배되었다가,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과거 홍문관에 있을 때 왕의 후원관사(後苑觀射)를 논계(論啓)했던 죄로 원배(遠配)된 뒤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하였다. 부안의 도동서원(道東書院),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좌찬성 성억(成抑)의 후손이며 성팽로(成彭老)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났고, 생원‧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할 때에는 하루에 시 30여편을 지어 함께 공부하던 김일손(金馹孫)‧조위(曺偉) 등을 놀라게 하였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497년(연산군 3) 홍문관저작으로 승진한 후 박사에 이르러 경연사경(經筵司經) 및 춘추관사관을 겸하여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 때 경연관으로서 명현들의 무고한 화를 변호하다가 인산(麟山)에 유배되었다.
그뒤 1500년 하동으로 이배되었다가,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과거 홍문관에 있을 때 왕의 후원관사(後苑觀射)를 논계(論啓)했던 죄로 원배(遠配)된 뒤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하였다. 부안의 도동서원(道東書院),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國朝榜目
江漢集
燕山君日記
國朝榜目
江漢集
[집필자]
이현희(李炫熙)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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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