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李穟)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74C218FFFFB1458X0 |
자(字) | 군실(君實) |
생년 | 1458(세조 4) |
졸년 | 1516(중종 11)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규(李閨)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수(李穟)
1458년(세조 4)∼1516년(중종 1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실(君實). 부사과 이규(李閨)의 아들이다.
1486년(성종 17)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여 사과직을 제수받고, 1497년(연산군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 이듬해에는 감찰이 되었다. 그해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호조정랑‧겸춘추관기주관‧승문원교리를 역임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를 만나 전주에 퇴거하였으며, 1507년(중종 2) 재등용되어 예조정랑‧한성부서윤‧봉상시부정을 거쳐, 1509년 충주목사로 나갔다.
그뒤 잇따른 집안의 우환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환향(還鄕)하였다.
1514년 전적으로 재등용된 뒤, 소격서령(昭格署令)‧직강(直講)을 거쳐 회양부사로 나갔다.
강직하여 권세에 아부하지 않았고, 민정(民情)에 전념하여 부역을 고르게 하고자 하였다.
1486년(성종 17)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여 사과직을 제수받고, 1497년(연산군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 이듬해에는 감찰이 되었다. 그해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호조정랑‧겸춘추관기주관‧승문원교리를 역임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를 만나 전주에 퇴거하였으며, 1507년(중종 2) 재등용되어 예조정랑‧한성부서윤‧봉상시부정을 거쳐, 1509년 충주목사로 나갔다.
그뒤 잇따른 집안의 우환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환향(還鄕)하였다.
1514년 전적으로 재등용된 뒤, 소격서령(昭格署令)‧직강(直講)을 거쳐 회양부사로 나갔다.
강직하여 권세에 아부하지 않았고, 민정(民情)에 전념하여 부역을 고르게 하고자 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二樂亭集(申用漑)
國朝人物考
二樂亭集(申用漑)
[집필자]
권인혁(權仁赫)
명 : "수(穟)"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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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