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李象範)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74C0C1BC94B1897X0 |
| 호(號) | 청전(靑田) |
| 생년 | 1897(광무 1) |
| 졸년 | 1972 |
| 시대 | 항일기 |
| 활동분야 | 미술 > 화가 |

| 부 | 이승원(李承遠) |
| 출생지 |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 |

[상세내용]
이상범(李象範)
1897년∼1972년. 근대화단의 대표적인 한국화가. 호는 청전(靑田).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에서 몰락한 선비 이승원(李承遠)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생활고 때문에 1915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학비를 받지 않던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 입학, 1917년 수료한 뒤 스승 안중식(安中植)의 화실인 경묵당(耕墨堂)에서 기거하며 계속 화업을 쌓았다.
1923년 이용우(李用雨)‧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과 동연사(同硯社)를 조직하고 전통회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으나, 그해 11월에 노수현과 함께 2인전을 개최하는 것으로 중단되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929년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하였으며, 이어서 추천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사 재직시 일장기말살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뒤, 1933년에 자택에 설립하였던 청전화숙(靑田畵塾)에서 광복 때까지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4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창설되자 이에 참여하여 추천작가‧심사위원‧고문 등을 역임하며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부터 1961년의 정년퇴직시까지는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이러한 업적으로 1957년 예술원공로상, 1962년 문화훈장, 1963년 3‧1문화상, 1965년 서울시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서화미술원과 경묵당 수학시절인 초기에 안중식의 화풍을 따라 남북종(南北宗)절충화풍을 구사하였으나, 1923년 무렵부터는 논과 개울을 근경에 두고 나지막한 야산을 원경에 배치하여 횡으로 전개되는 독창적인 구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를 대표할만한 작품으로는 개인 소장의 「산수도」(1919)와 제3회 및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인 「모연도(暮煙圖)」(1924)‧「초동도(初冬圖)」(1926)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독자적인 양식이 형성되는 것은 1945년 이후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농촌의 전원풍경을 2단의 간단한 구도 속에 배치하고 엷은 먹에서 차츰 진한 데로 옮아가는 농담의 묘를 살려 향토색 짙은 세계로 승화시키고 있다.
특히 시골 산야의 정취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특유의 기법으로 처리하여 한국적 서정성을 격조 높게 다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동아일보사 소장의 「설로도(雪路圖)」(1957), 개인 소장의 「고원귀려도(高原歸旅圖)」(1959) 등이 있다.
그는 전통적 수묵기법의 새로운 창조적 추구와 더불어 한국 산야와 전원의 독특한 향토적 분위기를 독자적인 사상풍의 화법으로 구현시킨 근대한국화의 대표적 산수화가이다.
생활고 때문에 1915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학비를 받지 않던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 입학, 1917년 수료한 뒤 스승 안중식(安中植)의 화실인 경묵당(耕墨堂)에서 기거하며 계속 화업을 쌓았다.
1923년 이용우(李用雨)‧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과 동연사(同硯社)를 조직하고 전통회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으나, 그해 11월에 노수현과 함께 2인전을 개최하는 것으로 중단되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929년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하였으며, 이어서 추천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사 재직시 일장기말살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뒤, 1933년에 자택에 설립하였던 청전화숙(靑田畵塾)에서 광복 때까지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4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창설되자 이에 참여하여 추천작가‧심사위원‧고문 등을 역임하며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부터 1961년의 정년퇴직시까지는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이러한 업적으로 1957년 예술원공로상, 1962년 문화훈장, 1963년 3‧1문화상, 1965년 서울시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서화미술원과 경묵당 수학시절인 초기에 안중식의 화풍을 따라 남북종(南北宗)절충화풍을 구사하였으나, 1923년 무렵부터는 논과 개울을 근경에 두고 나지막한 야산을 원경에 배치하여 횡으로 전개되는 독창적인 구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를 대표할만한 작품으로는 개인 소장의 「산수도」(1919)와 제3회 및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인 「모연도(暮煙圖)」(1924)‧「초동도(初冬圖)」(1926)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독자적인 양식이 형성되는 것은 1945년 이후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농촌의 전원풍경을 2단의 간단한 구도 속에 배치하고 엷은 먹에서 차츰 진한 데로 옮아가는 농담의 묘를 살려 향토색 짙은 세계로 승화시키고 있다.
특히 시골 산야의 정취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특유의 기법으로 처리하여 한국적 서정성을 격조 높게 다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동아일보사 소장의 「설로도(雪路圖)」(1957), 개인 소장의 「고원귀려도(高原歸旅圖)」(1959) 등이 있다.
그는 전통적 수묵기법의 새로운 창조적 추구와 더불어 한국 산야와 전원의 독특한 향토적 분위기를 독자적인 사상풍의 화법으로 구현시킨 근대한국화의 대표적 산수화가이다.
[참고문헌]
靑田畵集(東亞日報社, 1972)
近代韓國美術家論攷(李慶成, 一志社, 1974)
韓國現代美術史―東洋畵―(李龜烈, 國立現代美術館, 1976)
韓國現代美術全集 2(한국일보社, 1976)
韓國現代美術史(吳光洙, 悅話堂, 1979)
靑田과 小亭(現代畵廊‧東山房畵廊, 1985)
近代韓國美術家論攷(李慶成, 一志社, 1974)
韓國現代美術史―東洋畵―(李龜烈, 國立現代美術館, 1976)
韓國現代美術全集 2(한국일보社, 1976)
韓國現代美術史(吳光洙, 悅話堂, 1979)
靑田과 小亭(現代畵廊‧東山房畵廊, 1985)
[집필자]
이경성(李慶成)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