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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영(張基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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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석정(石正)
생년1903(광무 7)
졸년1981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강원도 영월
저서『우익정당의 단합론』
저서『우익정당의 갈 길』
공훈건국포장

[상세내용]

장기영(張基永)
1903년∼1981년.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석정(石正). 강원도 영월 출신.

상해임시정부의 시베리아기관인 한인군사위원회(韓人軍事委員會)의 위원으로 활약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1924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하였다.

그해 상해임시정부에서 안창호(安昌浩)김구(金九)의 권유를 받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30년 버틀러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인디애나주립대학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며 학업을 계속하였다.

1932년 겨울 이승만(李承晩)의 부름을 받고 워싱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위원으로 임명되어 독립자금을 모금하고, 교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3년 봄 구미위원부는 미국일본간의 전쟁이 확대되자 한미공동전투활동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그를 비롯한 재미한국청년들을 미국방성 전략정보처(OSS)에 추천하여 정보‧통신 등 특수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미군에 자원입대하여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동안 충칭(重慶)에 있는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1948년 강원도 영월에서 무소속으로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그해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49∼1952년까지 체신부장관, 아시아반공대회 한국대표(1956∼1960),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 사장(1957∼1960), 서울특별시장(1960) 등을 지냈다.

그뒤 정당활동에 정열을 쏟아 1967년 신민당 운영위원, 1971년 국민당 사무총장, 민중당 총재를 지냈다.

저서는 『우익정당의 단합론』『우익정당의 갈 길』이 있다.

1977년 독립운동 공로로 건국포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韓國共産主義運動史 1(金俊燁‧金昌順, 高麗大學校亞細亞問題硏究所, 1967)
東亞年鑑(東亞日報社, 1972)
歷代國會議員總覽(韓國國會人物史編纂會編, 租稅公論社, 1983)
大韓民國歷代三府要人總鑑(大韓民國功勳史發刊委員會編, 光復出版社, 1986)
獨立有功者功勳錄 5(國家報勳處, 1986)

[집필자]

손희두(孫熙斗)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