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박렬(朴烈)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BC15B82CFFFFB1902X0
이명(異名)박준식(朴準植)
생년1902(광무 6)
졸년1974
시대항일기
본관함양(咸陽)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경상북도 문경
저서『신조선혁명론』

[상세내용]

박렬(朴烈)
1902년∼1974년. 무정부주의계통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양(咸陽). 초명은 준식(準植) 또는 혁(爀). 경상북도 문경 출신.

함창보통학교(咸昌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京城第二高等普通學校)에 입학,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퇴학당하자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이무렵 일본의 사회운동가인 오스기(大杉榮)사카이(堺利彦) 등과 접촉하며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하였다.

1921년 김판국(金判國)김약수(金若水)조봉암(曺奉巖)서상일(徐相日) 등 20여명과 함께 신인연맹(新人聯盟)과 흑양회(黑洋會)를 통합하여 흑도회(黑濤會)를 창설하여 사회주의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2년 김약수 등 공산주의계열과 분리, 무정부주의자들을 규합하여 풍뢰회(風雷會, 일명 黑友會)를 결성하였으며, 이 단체의 기관지로 『흑도(黑濤)』『불령선인(不逞鮮人)』『현대사회』 등을 발간하였다.

1923년 비밀결사인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고 9월로 예정된 일본 황태자 결혼식을 기하여 일본 천황을 비롯한 일본 황실요인을 일거에 폭살시키려고 자기의 애인인 가네코(金子文子)와 같이 거사계획을 추진하던 중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가 발생하고 불령사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붙잡혔다.

1926년 대역죄로 일본 대심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곧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1945년 광복을 맞아 22년2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1946년 일본거류민단의 전신인 신조선건설동맹(新朝鮮建設同盟)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재일거류민단으로 개편되자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직후 귀국하여 장학사업에 종사하던 중 6‧25 때 납북되었다.

저서로는 『신조선혁명론』이 있다.

[참고문헌]

東亞日報

[집필자]

신재홍(申載洪)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