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환(張斗煥)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A5B450D658B1894X0 |
생년 | 1894(고종 31) |
졸년 | 1921 |
시대 | 항일기 |
활동분야 | 호국 > 독립운동가 |
출신지 | 충청남도 천안 |
공훈 | 건국훈장 국민장 |
[상세내용]
장두환(張斗煥)
1894년(고종 31)∼1921년.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천안 출신.
1917년 비밀항일결사인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입단, 김한종(金漢鍾)과 함께 충청남북도 담당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유중협(柳重協)‧강석주(姜奭周)‧김재창(金在昶) 등 수많은 동지를 포섭하여 입단하게 하였으며, 각지에서 군자금조달에 힘썼다.
대한광복단이 만주에 독립군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대규모의 무력항일전투를 펼 때를 대비하여 군자금모금활동을 폈다.
1918년 1월 24일 김경태(金敬泰)‧임봉주(林鳳柱)와 함께 친일파인 아산군 도고면의 면장 박용하(朴容夏)를 찾아가 광복단의 사형선고문을 낭독한 뒤 사살하였다.
그러나 광복단원이었던 이종국(李鍾國)이 천안경찰서에 밀고함으로써 광복단의 활동이 발각되어 붙잡혔다.
1919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1921년 4월에 옥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1917년 비밀항일결사인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입단, 김한종(金漢鍾)과 함께 충청남북도 담당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유중협(柳重協)‧강석주(姜奭周)‧김재창(金在昶) 등 수많은 동지를 포섭하여 입단하게 하였으며, 각지에서 군자금조달에 힘썼다.
대한광복단이 만주에 독립군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대규모의 무력항일전투를 펼 때를 대비하여 군자금모금활동을 폈다.
1918년 1월 24일 김경태(金敬泰)‧임봉주(林鳳柱)와 함께 친일파인 아산군 도고면의 면장 박용하(朴容夏)를 찾아가 광복단의 사형선고문을 낭독한 뒤 사살하였다.
그러나 광복단원이었던 이종국(李鍾國)이 천안경찰서에 밀고함으로써 광복단의 활동이 발각되어 붙잡혔다.
1919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1921년 4월에 옥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豫審終結書
東亞日報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原卿‧申載洪, 韓國民族運動硏究所, 1971)
東亞日報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原卿‧申載洪, 韓國民族運動硏究所, 1971)
[집필자]
신재홍(申載洪)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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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