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박건병(朴健秉)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BC15AC74BCD1B1892X0
생년1892(고종 29)
졸년1932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강원도 철원
공훈건국훈장 독립장

[상세내용]

박건병(朴健秉)
1892년(고종 29)∼1932년. 독립운동가. 강원도 철원 출신.

1919년 8월 11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군단조직에 참가하였다. 임시정부와 연계되어 김상덕(金相德)을 주동으로 조직된 애국단에서 학무과장을 맡았다.

이어서 8월 20일에는 강원도 도단부를 설치하는 데도 참가하였는데, 애국단은 같은해 10월에 임시정부의 명령에 따라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제2의 시위를 주도하였다.

10월 10일에 철원 사요리(四要里) 우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될 때, 오세덕(吳世德)과 더불어 군중들의 시위 참여를 극력 권고하고, 태극기 게양과 인쇄물 배포 등을 주도하였다.

이 시위 직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가하였고, 1920년 1월에 임시의정원 의원(강원도 대표)으로 선출되었다. 이어서 1921년 4월 20일에는 북경에서 열린 군사통일주비회에 하와이독립단 대표자격으로 참가하여 국민대표회주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상해로 가서 국민대표회의를 준비하다가 1923년 1월부터 5월말까지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북경지역 대표로 참석한 그는 창조파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국민대표회의가 큰 결실없이 끝난 뒤, 1926년에 또다시 투쟁역량 결집을 위한 움직임이 안창호(安昌浩)원세훈(元世勳) 사이에 시작되었다.

중국본토지역에서 민족협동전선을 결성하기 위한 유일당운동이 그것이다. 첫 결실로 1926년 10월 16일에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가 결성되었는데, 이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여 장건상(張建相) 등 6명과 더불어 집행위원이 되었다.

이어서 상해남경광동무한 등에서도 유일당 독립당촉성회가 속속 결성되었고, 1927년 11월 9일에는 이들 다섯 지역의 대표들이 상해에 모여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여기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여 15인의 집행위원 가운데 한사람으로 선출되었다.

다음해인 1928년 5월 12일부터 26일까지 만주 화전(樺甸)반석(盤石)에서 개최된 전민족유일당조직회에 참석하여 만주지역에서의 항일민족운동 단체들의 통합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獨立新聞
高等警察要史(朝鮮總督府慶北警察部, 1934)
獨立運動史 4‧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1973)
독립운동사자료집 8‧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1975)
韓國民族運動史料 -中國篇-(國會圖書館, 1976)
朝鮮獨立運動 2(金正明, 東京 原書房1967)
騎驢隨筆(宋相燾, 探求堂, 1974)
中國關內韓國獨立運動 團體硏究(金喜坤, 知識産業社, 1994)

[집필자]

김희곤(金喜坤)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12-31동아일보 1932년 1월 31일 사망 기사에 의거해 졸년을 추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