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金載根)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7ACADFCB1894X0 |
이명(異名) | 김상덕(金相德) |
생년 | 1894(고종 31) |
졸년 | 1964 |
시대 | 항일기 |
활동분야 | 호국 > 독립운동가 |
출신지 | 강원도 김화 |
공훈 | 건국훈장국민장 |
[상세내용]
김재근(金載根)
1894년∼1964년. 독립운동가. 일명 김상덕(金相德). 강원도 김화 출신.
1908년에 고향인 김화에서 신창학교(新昌學校)를 세워 민족정신을 선양하였으며, 3‧1운동 당시에는 연희전문학교 학생으로서 이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을 받던 중 보석으로 출옥하였다.
출옥한 뒤, 권인채(權仁采)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의 조직에 관하여 협의한 뒤 철원으로 내려와 박연서(朴淵瑞)‧강대려(姜大呂)‧김완호(金完鎬) 등과 함께 철원군단(鐵原郡團)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단체로서 본부를 서울에 두고 재정자금 모집 및 조달활동을 폈는데, 그 지부로 조직된 철원군단은 그뒤 강원도단(江原道團)으로 발전하였고, 강원도내 각 군에 군단을 설치하여 조직을 확대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이밖에도 충청도와 전라도에 지부를 조직하였으나, 강원도단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여 보통 철원애국단이라고 불리었다.
1920년초 재정자금 수합활동을 전개하던 중, 이 단의 조직과 활동이 일본경찰에 발각됨으로써 단원들과 함께 붙잡혔으며, 이어 징역4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국민장이 수여되었다.
1908년에 고향인 김화에서 신창학교(新昌學校)를 세워 민족정신을 선양하였으며, 3‧1운동 당시에는 연희전문학교 학생으로서 이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을 받던 중 보석으로 출옥하였다.
출옥한 뒤, 권인채(權仁采)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의 조직에 관하여 협의한 뒤 철원으로 내려와 박연서(朴淵瑞)‧강대려(姜大呂)‧김완호(金完鎬) 등과 함께 철원군단(鐵原郡團)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단체로서 본부를 서울에 두고 재정자금 모집 및 조달활동을 폈는데, 그 지부로 조직된 철원군단은 그뒤 강원도단(江原道團)으로 발전하였고, 강원도내 각 군에 군단을 설치하여 조직을 확대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이밖에도 충청도와 전라도에 지부를 조직하였으나, 강원도단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여 보통 철원애국단이라고 불리었다.
1920년초 재정자금 수합활동을 전개하던 중, 이 단의 조직과 활동이 일본경찰에 발각됨으로써 단원들과 함께 붙잡혔으며, 이어 징역4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국민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2‧4‧8‧9(독립운동편찬위원회, 1971‧1972‧1976‧1977)
독립운동사자료집 5‧9‧1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1975‧1977)
太白抗日史(趙東杰, 江原日報社, 1977)
독립운동사자료집 5‧9‧1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1975‧1977)
太白抗日史(趙東杰, 江原日報社, 1977)
[집필자]
조동걸(趙東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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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