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李止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9C0C6D0B1801X0 |
생년 | ?(미상) |
졸년 | 1866(고종 3)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충효열 > 순절인 |
부 | 이면백(李勉伯) |
모 | 청송심씨(靑松沈氏) |
[상세내용]
이지원(李止遠)
미상∼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의 순절인(殉節人). 본관은 전주(全州).
부친은 증이조판서 이면백(李勉伯)이며, 모친은 증정부인(贈貞夫人)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군수를 지냈으며,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부를 점령하자, 형 이시원(李是遠)은 국가의 불행에 죽는 관리가 한명도 없는 것을 개탄하고, 신하로서 도망갈 수 없다며 유소(遺疏)를 올리고 자결하려 하였다.
그가 형을 따르겠다고 하자 이시원이 만류하였으나, 동생이 형을 따라 죽는 것은 형이 나라를 위하는 것과 같다면서 형과 함께 음독, 순국하였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 종정경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 同知義禁府 宗正卿副使 五衛都摠府 副摠管)이라는 직함과 작계지전(綽稧之典)을 내렸다.
부친은 증이조판서 이면백(李勉伯)이며, 모친은 증정부인(贈貞夫人)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군수를 지냈으며,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부를 점령하자, 형 이시원(李是遠)은 국가의 불행에 죽는 관리가 한명도 없는 것을 개탄하고, 신하로서 도망갈 수 없다며 유소(遺疏)를 올리고 자결하려 하였다.
그가 형을 따르겠다고 하자 이시원이 만류하였으나, 동생이 형을 따라 죽는 것은 형이 나라를 위하는 것과 같다면서 형과 함께 음독, 순국하였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 종정경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 同知義禁府 宗正卿副使 五衛都摠府 副摠管)이라는 직함과 작계지전(綽稧之典)을 내렸다.
[참고문헌]
騎驢隨筆
[집필자]
장영민(張泳敏)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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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