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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부(江華府)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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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분류경관
소분류동반

[품계]

[상세내용]

조선시대 종이품아문(從二品衙門)으로 강화도(江華島)를 다스리는 일을 담당하였다. 원래는 도호부(都護府)인데, 1618년(광해군 10)에 부윤(府尹)으로 승격시키고, 1627년(인조 5)에 유수(留守:從二品)를 두었다.

강화부(江華府) 관원으로 유수는 2원으로, 1원은 경기도관찰사가 예겸하고, 경력(經歷:從四品)은 1원, 분교관(分敎官:從九品)은 1원인데, 강화부의 생원‧진사‧유학 중 유수가 임금에게 보고하여 임명하였고, 검률(檢律:從九品)은 1원[대전통편에서 신설]이 있었다. 이속(吏屬)으로 서리(書吏) 50인[대전통편에서 40인을 두었으나, 대전회통에서 50인으로 증원]이 있었다.

강화유수(江華留守)가 겸직하는 진무사(鎭撫使:從二品)의 관하에 종사관(從事官) 1원은 경력(經歷)이 겸하였고, 중군(中軍:正三品 堂上) 1원은 수성장(守城將)을 겸하였고, 천총(千摠) 4원, 파총(把摠) 10원, 초관(哨官) 63원, 지구관(知彀官) 10원, 기패관(旗牌官) 51원, 각읍 군관 874인, 교사(敎師) 116인과 군총(軍摠)으로 장려(壯旅) 18초, 의려(義旅) 18초, 무학(武學) 12초, 속오(束伍) 12초, 아병(牙兵) 1초, 별파진(別破陳) 167명, 표하군(標下軍) 4,466명, 돈군(墩軍) 3초, 요망군(瞭望軍) 30명이 있었다.

[별칭]

혈구(穴口), 해구(海口), 강도(江都), 심주(沁州)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