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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우(延起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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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봉렬(奉烈)
이명(異名)기호(基浩)
생년?(미상)
졸년1914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호국 > 의병
출신지경기도 삭녕
공훈건국훈장 대통령장

[상세내용]

연기우(延起羽)
미상∼1914년. 한말의 의병장. 일명 봉렬(奉烈)기호(基浩). 경기도 삭녕 출신.

일찍이 군문에 들어가 강화진위대부교(江華鎭衛隊副校)로 있다가 1907년 8월 한국군이 강제해산되자 덕물포(德物浦)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같은 진위대 부교인 지홍윤(池弘允)갑곶(甲串)에서 일본군 1개중대를 깨뜨리고 합류하여 덕물포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을 격파하였으나, 증원한 일본군의 강화부 공격으로 패하였다.

다시 의병 60여명을 소모(召募)한 뒤 동한창의대장(東韓倡義大將)이 되어 연천적성삭녕마전(麻田) 등지에 출몰하며 양주포천 방면의 강기동(姜基東)의병부대와 연결하여 여러 곳에서 일본군수비대와 경찰을 공격하였다.

1908년말 원수부13도총대장(元帥府十三道總大將)이인영(李麟榮)의 휘하에 들어가 서울 공략작전에 참가하였으나, 양주에서 패한 뒤 창의한북대장(倡義韓北大將)이 되어 다시 의병을 이끌고 고양연천마전삭녕강화교동 방면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2월에 삭녕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자 9명과 피금자 43명을 내고 많은 병기를 빼앗기는 패전을 당하였다.

그뒤 나머지 부하 수십명을 거느리고 안협(安峽)으로 들어가 철원평강이천 등지를 전전하다가 5월에 일본군에게 사로잡혔다가 탈출하였다.

그뒤에도 활동을 계속하다가 국권상실 후 일본군에게 잡혀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梅泉野錄
大韓季年史
韓國獨立運動之血史(朴殷植, 維新社, 1920)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義兵傳(尹炳奭, 韓國近代史料論, 一潮閣, 1979)

[집필자]

박광성(朴廣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