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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준(安東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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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1875(고종 12)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안동준(安東晙)
미상∼1875년(고종 12). 조선 말기의 문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심복으로서, 1867년(고종 4) 동래 부산에 주재하면서 왜학훈도(倭學訓導)가 되어 동래부사 정현덕(鄭顯德)과 함께 대일외교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1869년 대마도주(對馬島主) 소씨(宗氏)가 보내온 외교문서(書契)가 일본의 왕정복고 이전의 격식과 다르므로 이의 수리를 거부하는 한편, 차사(差使)의 파견 역시 전례에 없는 일로 속히 돌아갈 것을 강경히 요청하였다.

1873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이듬해 정현덕과 함께 공금유용혐의로 파직당하고 동래부에 유배되었다.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홍순목(洪淳穆)강로(姜㳣) 등 중신들에게 글을 올려 민비측의 세자책봉문제를 비난하고 비밀외교를 반박하며 그 실정을 통론(痛論)하였으므로, 1875년 동래부 경계상에서 효수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朝鮮最近政治史(李瑄根, 正音社, 1950)
韓國史―最近世篇―(震檀學會, 乙酉文化社, 1961)

[집필자]

이종춘(李鍾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