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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학(徐丙鶴)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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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서병학(徐丙學)
생년?(미상)
졸년1894(고종 31)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종교 > 동학인
출신지충청북도 충주

[상세내용]

서병학(徐丙鶴)
미상∼1894년(고종 31). 동학의 혁신파 지도자. 일명 병학(丙學). 충청북도 충주 출신.

1880년대 서인주(徐仁周) 등과 동학에 입도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1890년대초에 전개되는 교조신원운동 당시 사실상의 주도자였다.

7월부터 당시 동학교주 최시형(崔時亨)을 설득하여 교조(敎祖)의 신원(伸寃)과 동학교도들에 대한 관(官)의 부당주구(不當誅求)에 반대하여, 전라도 삼례(參禮)에서 동학교인들을 모아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전라도관찰사 이경직(李耕稙)으로부터 부당주구를 금지하는 명령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이경직이 확약한 부당주구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동학에 대한 관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이에 최시형을 설득하여 1893년(고종 30) 2월의 서울 복합상소운동(伏閤上疏運動)을 적극 주도하였다. 서울 복합상소를 이용하여 교도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병대(兵隊)와 협력하여 정부간당(政府奸黨)을 소탕하고 조정의 대개혁을 단행할 것을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려 했으나 보수파의 반대로 중지하였다.

이에 ‘외교배척(外敎排斥) 외상축거(外商逐去)’를 요구하는 글을 서울의 기독교회와 각국 영사관 벽에 붙이는 ‘괘서사건(掛書事件)’을 주도하기도 하였으나 이 또한 실패하였다.

같은해 3월 충청도 보은에서 ‘척왜양(斥倭洋)’의 기치를 내건 동학의 ‘보은취회(報恩聚會)’를 적극 주도하였으며, 이 당시의 위치는 ‘차좌(次座)’였으나 사실상의 보은취회 주도자였다.

그러나 양호선무사(兩湖宣撫使) 어윤중(魚允中)의 해산명령이 있은 뒤 동학 상층 지도부가 몰래 도망함으로써 보은취회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혁신적 노선은 1892∼1893년의 동학교조신원운동에 당시 농민층들의 반봉건‧반침략의 요구를 일정하게 반영함으로써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선구가 되게 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즉, 1894년 전봉준(全琫準)이 주도한 동학농민전쟁은 혁신파였던 서병학의 노선을 계승,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續陰晴史
全琫準供招
海月先生文集
本敎歷史
侍天敎宗繹史
天道敎書
天道敎會史草稿
侍天敎歷史
天道敎創建史(李敦化編, 天道敎中央宗理院, 1933)
東學史(吳知泳, 永昌書館, 1940)
東學亂記錄 下(國史編纂委員會, 1974)
1892∼1893年의 東學農民運動과 그 性格(金義煥, 韓國史硏究 5, 1970)
古阜民亂의 硏究 上(鄭昌烈, 韓國史硏究 48, 1985)

[집필자]

박맹수(朴孟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