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원규(卞元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C0C6D0ADDCB1837X0 |
자(字) | 대시(大始) |
호(號) | 주항(蛛舡)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초계(草溪)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변원규(卞元圭)
생졸년 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대시(大始), 호는 길운(吉雲)‧주항(蛛舡).
개화기에 무비자강(武備自强)을 위한 청나라에의 유학생 파견을 주선하기 위하여 청자문(請咨文)을 가지고 1880년(고종 17) 별뢰자관(別賚咨官)으로 청나라에 파견되어 이홍장(李鴻章)과 4개조로 된 조선국원변래학제조조련장정(朝鮮國員辨來學製造操練章程)을 체결하여 성공적인 외교교섭으로 유학생 파견을 가능케 하였다.
1881년 영선사(領選使) 김윤식(金允植)을 따라 별견당상(別遣堂上)으로 파견되어 군기제조 학습을 위한 유학생단을 인솔하고 청나라에 건너가 그곳에 머물며 3차에 걸친 김윤식과 이홍장 회담에 참석하였다.
귀국 후 1882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정각사(征搉司)의 참의를 거쳐 1884년 기계국방판(器械局幇辦)이 되고 이어 지돈녕부사‧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
개화기에 무비자강(武備自强)을 위한 청나라에의 유학생 파견을 주선하기 위하여 청자문(請咨文)을 가지고 1880년(고종 17) 별뢰자관(別賚咨官)으로 청나라에 파견되어 이홍장(李鴻章)과 4개조로 된 조선국원변래학제조조련장정(朝鮮國員辨來學製造操練章程)을 체결하여 성공적인 외교교섭으로 유학생 파견을 가능케 하였다.
1881년 영선사(領選使) 김윤식(金允植)을 따라 별견당상(別遣堂上)으로 파견되어 군기제조 학습을 위한 유학생단을 인솔하고 청나라에 건너가 그곳에 머물며 3차에 걸친 김윤식과 이홍장 회담에 참석하였다.
귀국 후 1882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정각사(征搉司)의 참의를 거쳐 1884년 기계국방판(器械局幇辦)이 되고 이어 지돈녕부사‧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日省錄
承政院日記
陰晴史
領選使行에 대한 一考察―軍械學造事를 中心으로―(權錫奉, 歷史學報 17‧18合輯, 1962)
承政院日記
陰晴史
領選使行에 대한 一考察―軍械學造事를 中心으로―(權錫奉, 歷史學報 17‧18合輯, 1962)
[집필자]
이종춘(李鍾春)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