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연(白樂淵)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31C545C5F0B1828X0 |
자(字) | 도원(道源) |
생년 | 1828(순조 2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수원(水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백낙연(白樂淵)
1828년(순조 28)(주1)
~졸년 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도원(道源)(주2)
. 본관은 수원(水原)(주3)
.
증조부는 백동언(白東彦)이며, 조부는 백홍진(白泓鎭)이고, 부친은 백희수(白希洙)이다. 생부는 백필수(白必洙)이다. 외조부는 윤민동(尹敏東)이고, 처부는 한익동(韓益東)(주4)
이다.
1866년(고종 3) 당시 철산부사(鐵山府使)로서 재직하던 중에 미국상인 프레스톤(Preston) 등이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號)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올라와서 통상을 요구하다가 오히려 중군(中軍) 이현익(李玄益)을 감금하는 등 만행을 부리자 평안도관찰사 박규수(朴珪壽)와 평양서윤(平壤庶尹) 신태정(申泰鼎) 등과 의논한 끝에 화공으로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다.
그뒤 1878년 제주목사로 재임할 때 제주 지방의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피해가 심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훌륭한 진구(賑救)를 행하여 목민관으로서 소임을 다하였다.
1881년 영선사(領選使) 김윤식(金允植)과 학도(學徒) 25명 및 공장(工匠) 13명을 포함한 총인원 69명으로 청나라에 군기제조의 학습을 위하여 떠난 영선사행(領選使行)의 관변(官辨)의 일원으로 따라갔다가 귀국하였다.
생년 |
본인의 음보와 무보를 참고하여 생년을 추가함. |
자 |
본인의 음보와 무보를 참고하여 자를 추가함. |
본관 |
본인의 음보와 무보를 참고하여 본관을 수원(水原)으로 추가함. |
증조부는 백동언(白東彦)이며, 조부는 백홍진(白泓鎭)이고, 부친은 백희수(白希洙)이다. 생부는 백필수(白必洙)이다. 외조부는 윤민동(尹敏東)이고, 처부는 한익동(韓益東)(주4)
가계 |
본인의 음보와 무보를 참고하여 부, 조, 증조, 외조, 처부를 추가함. |
1866년(고종 3) 당시 철산부사(鐵山府使)로서 재직하던 중에 미국상인 프레스톤(Preston) 등이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號)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올라와서 통상을 요구하다가 오히려 중군(中軍) 이현익(李玄益)을 감금하는 등 만행을 부리자 평안도관찰사 박규수(朴珪壽)와 평양서윤(平壤庶尹) 신태정(申泰鼎) 등과 의논한 끝에 화공으로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다.
그뒤 1878년 제주목사로 재임할 때 제주 지방의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피해가 심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훌륭한 진구(賑救)를 행하여 목민관으로서 소임을 다하였다.
1881년 영선사(領選使) 김윤식(金允植)과 학도(學徒) 25명 및 공장(工匠) 13명을 포함한 총인원 69명으로 청나라에 군기제조의 학습을 위하여 떠난 영선사행(領選使行)의 관변(官辨)의 일원으로 따라갔다가 귀국하였다.
[참고문헌]
日省錄
高宗實錄
陰晴史
Corea:the Hermit Nation(Griffis, W. E., Charles Scribner’s Sons, 1904)
高宗實錄
陰晴史
Corea:the Hermit Nation(Griffis, W. E., Charles Scribner’s Sons, 1904)
[이미지]
[집필자]
최진식(崔震植)
대표명 | 백낙연(白樂淵) |
성명 | 백낙연(白樂淵) |
성명 : "백낙연(白樂淵)"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2-06-27 | 본인의 무보와 음보를 참고하여 생년, 자, 본관, 가계정보를 추가함.[수정자: 이재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