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진(房元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29C6D0C9C4U9999X0 |
자(字) | 이성(而省) |
호(號) | 만오(晩悟)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용성(龍城)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조부 | 방응현(房應賢) |
[상세내용]
방원진(房元震)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의 의병. 본관은 용성(龍城). 자는 이성(而省), 호는 만오(晩悟). 방응현(房應賢)의 손자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양대박(梁大樸)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28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3년간 문과에 대비하여 학업에 열중하였으나 정국이 어지러움을 보고 과거를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후 신흠(申欽)의 천거로 찰방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군사와 군량미를 모집하는 데 활약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여산까지 진군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양대박(梁大樸)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28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3년간 문과에 대비하여 학업에 열중하였으나 정국이 어지러움을 보고 과거를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후 신흠(申欽)의 천거로 찰방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군사와 군량미를 모집하는 데 활약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여산까지 진군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참고문헌]
續雜錄(趙慶男)
晩悟實記
晩悟實記
[집필자]
이장희(李章熙)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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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