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록(金漢祿)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55CB85DU9999X0 |
자(字) | 여수(汝綏) |
호(號) | 한간(寒澗)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운경(金運慶) |
[상세내용]
김한록(金漢祿)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수(汝綏), 호는 한간(寒澗).
현감 김운경(金運慶)의 아들, 영조의 장인인 김한구(金漢耉)의 종제이며, 우의정 김관주(金觀柱)의 아버지이다. 한원진(韓元震)의 문인이다.
종질녀가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가 되자 그 후광을 업고 중앙의 명사들과 교유하고 노론벽파(老論僻派)의 당론을 조종하는 등 당쟁에 깊이 관여하였다.
관직은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그쳤으나, 종질인 김구주(金龜柱)와 함께 김상로(金尙魯)‧홍계희(洪啓禧)‧정휘량(鄭翬良)‧신만(申晩) 등 벽파 대신들을 조종하여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思悼世子)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죽게 하였다.
이어서 벽파(僻派)가 더욱 득세하자 시파(時派)의 핵심인물인 홍봉한(洪鳳漢)을 탄핵하여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왕세손(뒤의 정조)까지 해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죽은 뒤 그의 죄에 대한 추율안(追律案)이 비등하여져, 1806년(순조 6) 영의정 이병모(李秉模) 등 3대신의 소청에 따라 그의 아들‧조카에 이르기까지 유배형에 처해졌다.
현감 김운경(金運慶)의 아들, 영조의 장인인 김한구(金漢耉)의 종제이며, 우의정 김관주(金觀柱)의 아버지이다. 한원진(韓元震)의 문인이다.
종질녀가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가 되자 그 후광을 업고 중앙의 명사들과 교유하고 노론벽파(老論僻派)의 당론을 조종하는 등 당쟁에 깊이 관여하였다.
관직은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그쳤으나, 종질인 김구주(金龜柱)와 함께 김상로(金尙魯)‧홍계희(洪啓禧)‧정휘량(鄭翬良)‧신만(申晩) 등 벽파 대신들을 조종하여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思悼世子)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죽게 하였다.
이어서 벽파(僻派)가 더욱 득세하자 시파(時派)의 핵심인물인 홍봉한(洪鳳漢)을 탄핵하여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왕세손(뒤의 정조)까지 해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죽은 뒤 그의 죄에 대한 추율안(追律案)이 비등하여져, 1806년(순조 6) 영의정 이병모(李秉模) 등 3대신의 소청에 따라 그의 아들‧조카에 이르기까지 유배형에 처해졌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萬姓大同譜
恩坡遺稿(沈樂洙)
純祖實錄
萬姓大同譜
恩坡遺稿(沈樂洙)
[집필자]
조원래(趙湲來)
명 : "한록(漢祿)"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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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