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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집(李萬集)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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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76(고종 13)
졸년1944
시대항일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대구(大邱)
공훈건국훈장 애국장

[상세내용]

이만집(李萬集)
1876년(고종 13)∼1944년. 본관은 전주(全州).

대구(大邱) 출신의 독립 운동가로, 1919년 3월 8일에 대구 서문(西門) 장날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3월 2일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상(李容祥)으로부터 2백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김태련(金兌鍊)김영서(金永瑞)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결의했다.

3월 6일에 이갑성(李甲成)의 권유로 김태련의 남산동 자택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대한 독립기’라고 쓴 깃발과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철저하게 사전준비를 했다.

거사(擧事) 당일이 되자, 서문장에는 군중이 모여들었고, 계성학교‧대구고등 보통학교‧신명여학교 등 대구지역 학교의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그가 연설을 하고 만세를 선창하자, 시위 군중들도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기’를 앞세우고 일경(日警)과 기마대의 저지선을 뚫고 시위행진을 하였다.

그는 거사 현장에서 붙잡혀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獄苦)를 치렀다.

정부에서 그 공훈을 기려,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 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三一運動秘史

[집필자]

이채경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