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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金泰元){1}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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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김준(金準)
이명(異名)김참봉(金參奉)
호(號)죽봉(竹峰)
생년1870(고종 7)
졸년1908(융희 2)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호국 > 의병
출신지전라남도 나주
공훈건국훈장 국민장

[상세내용]

김태원(金泰元)
1870년(고종 7)∼1908년. 의병장. 별명은 김준(金準) 또는 김참봉. 호는 죽봉(竹峰). 전라남도 나주 출신.

의병 김율(金聿)은 동생이다. 순릉참봉(順陵參奉)을 지냈다.

1896년 정월 이천에서 김하락(金河洛)조성학(趙性學)구연영(具然英)신용희(申龍熙) 등과 화포군 도령장(都領將) 방춘식(方春植)과 모의하여 포군 100여명을 소집하였으며, 양근지평광주안성음죽 등지에서 군사를 모집하여 의진을 구성하였다. 이어 안성에서 민승천을 창의대장으로 추대, 후군장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1월 17일 일본 수비대의 내습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백현(魄峴)에 매복, 적을 공격하여 광주 장항장터까지 추격, 다수의 무기와 군량을 노획하였다.

1906년 동생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고창영광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이듬해 기삼연(奇參衍)의진의 선봉장이 되었으며 나주함평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1월 과 합진, 동복(同福) 무동산(舞童山)에서 요시다(吉田勝三郞) 기병부대 150명과 접전, 요시다의 목을 베었다.

이때 담양 추월산성(秋月山城)에서 총상을 치료중이던 기삼연이 붙잡혀 광주에서 총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장성(長城) 토촌 뒷산에 성을 쌓고 조전(弔戰)을 벌이다가 전사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韓國獨立運動史(愛國同志援護會, 1956)
韓國獨立史(金承學, 獨立文化社, 1965)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집필자]

박성수(朴成壽)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