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만(金采萬)
[상세내용]
김채만(金采萬)
1865년(고종 2)∼1911년. 조선 고종‧순종 때의 판소리 명창.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에서 태어났고, 뒤에 광주 속골(지금의 효덕동)에서 살았다.
철종 때 명창으로 이름이 높던 이날치(李捺致)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본래 목이 좋지 못하였으나 끈질긴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명창이 되었다.
1907년 창극단 협률사(協律社)에 참가하여 창극을 한 적도 있으나 판소리에 주력하였다.
소리에서는 극도로 장식적인 선율을 구사하는 정교한 기법을 썼다. 시원시원하게 청중을 휘어잡는 송만갑(宋萬甲)과는 대조적으로 쉰 목소리와 같이 컬컬하게 나오는 수리성에 양성이 낀 성음으로 극단적인 서편제(西便制)의 판소리를 개척하였으나, 47세의 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그의 소리는 일부밖에 전승되지 못하였다.
그의 장기는 「심청가」로 당대 독보였다. 특히 「심청가」의 첫머리인 ‘심봉사를 소개하는 대목’은 그의 특장으로, 박화섭(朴化燮)을 통하여 한승호(韓承鎬)에게 그 더늠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제자로는 김정문(金正文)‧한성태(韓成泰)‧박종원(朴宗元)‧공창식(孔昌植)‧박동실(朴東實)‧박화섭 등이 있다.
철종 때 명창으로 이름이 높던 이날치(李捺致)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본래 목이 좋지 못하였으나 끈질긴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명창이 되었다.
1907년 창극단 협률사(協律社)에 참가하여 창극을 한 적도 있으나 판소리에 주력하였다.
소리에서는 극도로 장식적인 선율을 구사하는 정교한 기법을 썼다. 시원시원하게 청중을 휘어잡는 송만갑(宋萬甲)과는 대조적으로 쉰 목소리와 같이 컬컬하게 나오는 수리성에 양성이 낀 성음으로 극단적인 서편제(西便制)의 판소리를 개척하였으나, 47세의 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그의 소리는 일부밖에 전승되지 못하였다.
그의 장기는 「심청가」로 당대 독보였다. 특히 「심청가」의 첫머리인 ‘심봉사를 소개하는 대목’은 그의 특장으로, 박화섭(朴化燮)을 통하여 한승호(韓承鎬)에게 그 더늠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제자로는 김정문(金正文)‧한성태(韓成泰)‧박종원(朴宗元)‧공창식(孔昌植)‧박동실(朴東實)‧박화섭 등이 있다.
[참고문헌]
朝鮮唱劇史(鄭魯湜, 朝鮮日報社出版部, 1943)
판소리小史(朴晃, 新丘文化社, 1974)
한국의 판소리(정병욱, 집문당, 1981)
판소리小史(朴晃, 新丘文化社, 1974)
한국의 판소리(정병욱, 집문당, 1981)
[집필자]
이보형(李輔亨)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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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