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승(鄭寅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778C2B9B1859X0 |
자(字) | 보여(保如) |
호(號) | 동곡(東谷) |
생년 | 1859(철종 10) |
졸년 | 1938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동래(東萊)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정인승(鄭寅昇)
1859년(철종 10)∼1938년. 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보여(保如), 호는 동곡(東谷). 본관은 동래(東萊).
증조부는 정원용(鄭元容)이고, 조부는 정기세(鄭基世)이며, 부친은 정범조(鄭範朝)이다. 외조부는 풍양조씨 조문화(趙文和)이고, 처부는 풍산홍씨 홍우경(洪佑慶)이다.1882년(고종 19) 유학(幼學)으로서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885년 대교가 된 뒤 시강원사서‧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889년에는 왕세자가 종묘에서 동향(冬享)하였을 때 대축(大祝)을 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고, 이해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으며 1894년에는 이조참의‧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지냈다.
1897년에는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임명되어 칙임관 4등이 주어졌고 1900년에는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이해 선희궁(宣禧宮) 작헌례(酌獻禮)에 겸장례비서승(兼掌禮祕書丞)으로 참여하여 가자되었다.
1901년에는 『일성록(日省錄)』의 편찬을 감독하는 윤발일성록보충감독(綸綍日省錄補充監督)으로 임명되고, 이듬해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되었다.
1903년에는 외직을 맡아 경기도‧충청남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다시 중추원의관으로 기용되었다.
1889년에는 왕세자가 종묘에서 동향(冬享)하였을 때 대축(大祝)을 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고, 이해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으며 1894년에는 이조참의‧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지냈다.
1897년에는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임명되어 칙임관 4등이 주어졌고 1900년에는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이해 선희궁(宣禧宮) 작헌례(酌獻禮)에 겸장례비서승(兼掌禮祕書丞)으로 참여하여 가자되었다.
1901년에는 『일성록(日省錄)』의 편찬을 감독하는 윤발일성록보충감독(綸綍日省錄補充監督)으로 임명되고, 이듬해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되었다.
1903년에는 외직을 맡아 경기도‧충청남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다시 중추원의관으로 기용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國朝榜目
淸選考
[집필자]
하원호(河元鎬)
명 : "인승(寅昇)"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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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1-09-30 | 東萊鄭氏族譜를 참고하여 자, 호, 졸년, 조부, 증조부 외조, 처부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