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철(金思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0ACCCA0B1847X0 |
자(字) | 자유(子由) |
생년 | 1847(헌종 13)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연안(延安)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출신지 | 경기도 수원 |

[상세내용]
김사철(金思轍)
1847년(헌종 13)∼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정치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유(子由). 경기도 수원 출신.
1878년(고종 15)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882년 홍문관응교, 1883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주사로 임명되어 당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외교사무를 맡아보게 되었다. 이어 용강현령(龍岡縣令)을 거쳐서 1890년 외무참의(外務參議)‧선산부사‧경상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1893년 일본주재 변리공사(辨理公使)로 있다가 귀국 후 형조참판을 거쳐 1894년 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1896년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1903년 장례원경(掌禮院卿)‧태의원경(太醫院卿), 1904년 의정부찬정‧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이 되었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병탄을 당한 뒤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작호를 받았다.
1878년(고종 15)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882년 홍문관응교, 1883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주사로 임명되어 당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외교사무를 맡아보게 되었다. 이어 용강현령(龍岡縣令)을 거쳐서 1890년 외무참의(外務參議)‧선산부사‧경상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1893년 일본주재 변리공사(辨理公使)로 있다가 귀국 후 형조참판을 거쳐 1894년 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1896년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1903년 장례원경(掌禮院卿)‧태의원경(太醫院卿), 1904년 의정부찬정‧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이 되었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병탄을 당한 뒤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작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文品案
大韓帝國官員履歷書(國史編纂委員會, 1972)
朝鮮貴族列傳(大村友之丞編, 1910)
大韓帝國官員履歷書(國史編纂委員會, 1972)
朝鮮貴族列傳(大村友之丞編, 1910)
[집필자]
조항래(趙恒來)
대표명 | 김사철(金思轍) |
성명 | 김사철(金思轍)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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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