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李胄榮)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8FCC601B1838X0 |
자(字) | 순경(舜敬) |
생년 | 1837(헌종 3) |
졸년 | 1917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유헌(李裕憲) |
모 | 풍양조씨(豊壤趙氏) |

[상세내용]
이주영(李胄榮)
1837년(헌종 3)∼1917년.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경(舜敬). 군수 이유헌(李裕憲)의 아들로, 모친은 풍양조씨(豊壤趙氏)이다.
1874년(고종 11) 5월 증광시에 급제한 뒤 부교리‧부수찬을 거쳐, 그해 8월 의정부 겸 문공사관(議政府兼文公事官)에 이르렀다.
그뒤 동부승지를 거쳐 1877년 대사성‧병조참의로 빠르게 승진하였으나 1884년 갑신정변 후 은거하였다.
1890년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94년 동학혁명 후 일본의 내정개혁 강요가 있자 고종은 기강을 세우고 대경장(大更張)을 하겠다면서 그를 대사헌으로 임명하였다. 그때 교정청당상도 겸임하였다.
광무연간에 장례원귀족사장(掌禮院貴族司長)‧시강원첨사‧궁내부특진관‧태의원경(太醫院卿) 등 궁내부 아문의 장을 역임하였다.
1910년 조선귀족령으로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1874년(고종 11) 5월 증광시에 급제한 뒤 부교리‧부수찬을 거쳐, 그해 8월 의정부 겸 문공사관(議政府兼文公事官)에 이르렀다.
그뒤 동부승지를 거쳐 1877년 대사성‧병조참의로 빠르게 승진하였으나 1884년 갑신정변 후 은거하였다.
1890년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94년 동학혁명 후 일본의 내정개혁 강요가 있자 고종은 기강을 세우고 대경장(大更張)을 하겠다면서 그를 대사헌으로 임명하였다. 그때 교정청당상도 겸임하였다.
광무연간에 장례원귀족사장(掌禮院貴族司長)‧시강원첨사‧궁내부특진관‧태의원경(太醫院卿) 등 궁내부 아문의 장을 역임하였다.
1910년 조선귀족령으로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文品案
朝鮮貴族列傳(大村友之丞, 總督府印刷局, 1910)
純宗實錄
文品案
朝鮮貴族列傳(大村友之丞, 總督府印刷局, 1910)
[집필자]
장영민(張泳敏)
명 : "주영(胄榮)"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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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