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귀(金錫龜)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C11DADC0B1835X0 |
| 자(字) | 경범(景範) |
| 호(號) | 대곡(大谷) |
| 생년 | 1835(헌종 1) |
| 졸년 | 1885(고종 22)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김해(金海)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 부 | 김국현(金國賢) |
| 조부 | 김재곤(金再坤) |
| 증조부 | 김정삼(金鼎三) |
| 처부 | 이광순(李光淳) |
| 외조부 | 김창운(金昌雲) |
| 출생지 | 전라북도 세산(細山: 지금의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 |
| 저서 | 「자경편(自警篇)」 |
| 저서 | 「사문문답(斯文問答)」 |
| 저서 | 『대곡선생문집(大谷先生文集)』 |

[상세내용]
김석귀(金錫龜)
1835년(헌종 1)∼1885년(고종 22).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경범(景範)이고, 호는 대곡(大谷)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북도 세산(細山: 지금의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김정삼(金鼎三)이고, 조부는 김재곤(金再坤)이며, 부친은 김국현(金國賢)이다. 외조부는 김창운(金昌雲)이고, 처부는 이광순(李光淳)이다.
노백헌(老柏軒) 정재규(鄭載圭), 일신(日新) 정의림(鄭義林)과 함께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노사학파의 3대 제자로 불렸다.
『맹자(孟子)』에 통달하여 김맹자(金孟子)로 불렸다.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담양군(潭陽郡) 대전면(大田面) 대곡리(大谷里)로 이사하였으나, 이후에도 27년간을 기정진의 문하를 왕래하면서 학문에 매진하였다. 그로 인하여 노사학이 더욱 정밀해졌으며, 저술 「자경편(自警篇)」과 「사문문답(斯文問答)」은 학문적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진원면(珍原面) 진원리(珍原里)의 고산서원(高山書院: 전라남도 기념물 제 63호)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대곡선생문집(大谷先生文集)』이 있다.
증조부는 김정삼(金鼎三)이고, 조부는 김재곤(金再坤)이며, 부친은 김국현(金國賢)이다. 외조부는 김창운(金昌雲)이고, 처부는 이광순(李光淳)이다.
노백헌(老柏軒) 정재규(鄭載圭), 일신(日新) 정의림(鄭義林)과 함께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노사학파의 3대 제자로 불렸다.
『맹자(孟子)』에 통달하여 김맹자(金孟子)로 불렸다.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담양군(潭陽郡) 대전면(大田面) 대곡리(大谷里)로 이사하였으나, 이후에도 27년간을 기정진의 문하를 왕래하면서 학문에 매진하였다. 그로 인하여 노사학이 더욱 정밀해졌으며, 저술 「자경편(自警篇)」과 「사문문답(斯文問答)」은 학문적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진원면(珍原面) 진원리(珍原里)의 고산서원(高山書院: 전라남도 기념물 제 63호)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대곡선생문집(大谷先生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大谷先生文集
[집필자]
박상수
| 대표명 | 김석귀(金錫龜) |
| 성명 | 김석구(金錫龜) |
성명 : "김석구(金錫龜)"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