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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응순(徐應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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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심(汝心)
호(號)경당(絅堂)
생년1824(순조 24)
졸년1880(고종 17)
시대조선후기
본관대구(大丘)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저서『경당유고』

[관련정보]

[상세내용]

서응순(徐應淳)
1824년(순조 24)∼1880년(고종 17).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여심(汝心), 호는 경당(絅堂).

달성부원군 종제(宗悌)의 후손이다. 유신환(兪莘煥)의 문하에서 심기택(沈琦澤)민태호(閔台鎬)김윤식(金允植)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1870년(고종 7) 음보(蔭補)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영춘현감(永春縣監)을 역임하고, 간성군수(杆城郡守)로 부임하여 임지에서 죽었다.

이이(李珥)를 숭모하여 학행을 닦았고 경서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대학』『중용』에 주력하였다.

또한, 「정전론(井田論)」을 지어 전제의 개선에 관한 의견을 내놓았으며, 간성군수가 되어서는 성긴 베옷을 입고 4월에는 보리밥으로 백성과 생활을 같이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었다.

저서로는 『경당유고』 4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絅堂遺稿
朝鮮儒敎淵源(張志淵, 亞細亞文化社, 1973)

[집필자]

양재렬(梁在烈)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1-01-04大丘徐氏世譜(2003년 간행)를 참고하여 본관을 달성(達城)에서 대구(大丘)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