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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승(崔鶴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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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언(聲彦)
호(號)화강(華岡)
생년1817(순조 17)
졸년1878(고종 15)
시대조선후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최윤곤(崔潤坤)
장연노씨(長淵盧氏)
외조부노주학(盧周學)
저서『화강일고』

[상세내용]

최학승(崔鶴昇)
1817년(순조 17)∼1878년(고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언(聲彦), 호는 화강(華岡).

부친은 성균진사 최윤곤(崔潤坤)이며, 모친은 장연노씨(長淵盧氏)노주학(盧周學)의 딸이다. 최치원(崔致遠)최승로(崔承老)최숙(崔肅)최제안(崔齊顔) 등의 후손이다.

1851년(철종 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852년 승문원부정자, 1860년 성균관전적사헌부지평을 지냈다.

1867년(고종 4) 공조참의, 1868년 승정원우부승지를 지냈고, 1869년 외직(外職)인 대흥군수(大興郡守)로 나갔다.

이때 목민관으로서 치정(治政)하였던 일들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하여 『대흥일록(大興日錄)』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1871년 우승지 겸 경연참찬관(右承旨兼經筵參贊官)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을 역임한 뒤 사직하여 귀향하였다.

1876년 국가에 큰 가뭄이 들고 흉년이 되어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자 사재(私財)를 털어 빈민을 진휼(賑恤)하고 환곡(還穀)을 대납해주었다.

목민관으로서의 선정과 효행등으로 수차례 백성들이 국가에 포상할 것을 진정한 글들이 문집의 부록에 실려 있다.

저서로는 『화강일고』가 있다.

[참고문헌]

華岡逸稿

[집필자]

김혈조(金血祚)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