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난수(朴蘭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B09CC218B1817X0 |
자(字) | 성가(聖歌) |
생년 | 1817(순조 17)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반남(潘南)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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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박종준(朴宗準) |
출신지 |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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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박난수(朴蘭壽)
1817년(순조 17)∼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가(聖歌). 서울 출신. 박종준(朴宗準)의 아들이다.
1850년(철종 1) 유학으로서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1853년 도당록(都堂錄)에 올랐다.
1866년(고종 3) 철종의 3년상을 마치고 그 신주를 태묘(太廟)에 모시는 부묘도감(祔廟都監)의 좌통례(左通禮)로 활동하여 상을 받았다.
1867년부터 1886년까지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대사간에 임명되어 주로 사간원의 관직이 제수되었다.
1887년 경기도관찰사 김명진(金明鎭)이 올린 장계에 따라 각 능원(陵園) 중 개간 등으로 훼손이 심한 지역의 지방관들을 처벌하게 되었는데, 풍덕부사(豊德府使) 재직시 관리소홀의 죄로 이문영(李文永) 등과 함께 문책되었다.
1850년(철종 1) 유학으로서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1853년 도당록(都堂錄)에 올랐다.
1866년(고종 3) 철종의 3년상을 마치고 그 신주를 태묘(太廟)에 모시는 부묘도감(祔廟都監)의 좌통례(左通禮)로 활동하여 상을 받았다.
1867년부터 1886년까지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대사간에 임명되어 주로 사간원의 관직이 제수되었다.
1887년 경기도관찰사 김명진(金明鎭)이 올린 장계에 따라 각 능원(陵園) 중 개간 등으로 훼손이 심한 지역의 지방관들을 처벌하게 되었는데, 풍덕부사(豊德府使) 재직시 관리소홀의 죄로 이문영(李文永) 등과 함께 문책되었다.
[참고문헌]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高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하원호(河元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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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