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金基纘)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AE30CC2CB1809X0 |
자(字) | 공서(公緖) |
호(號) | 석거(石居) |
생년 | 1809(순조 9)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청풍(淸風)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주묵(金周黙) |
저서 | 『석거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기찬(金基纘)
1809년(순조 9)∼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공서(公緖), 호는 석거(石居).
부친은 김주묵(金周黙)이다.
1835년(헌종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837년 홍문록(弘文錄)‧도당록(都堂錄)에 그 이름이 올랐다.
1842년에 경상우도 암행어사로 다녀와서 하동부사 이남원(李南轅), 금산군수 장조남(張照南), 남해현령 김증(金增), 성주목사 신재순(申在淳), 전우병사 조원석(趙元錫) 등의 죄상을 보고하고 그 처벌을 건의하였다.
그뒤 집의를 거쳐 1852년(철종 3)에 대사간이 되었으며, 1859년에는 이조참의를 지내고 이어서 참판을 지냈다.
저서로는 『석거집』이 있다.
부친은 김주묵(金周黙)이다.
1835년(헌종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837년 홍문록(弘文錄)‧도당록(都堂錄)에 그 이름이 올랐다.
1842년에 경상우도 암행어사로 다녀와서 하동부사 이남원(李南轅), 금산군수 장조남(張照南), 남해현령 김증(金增), 성주목사 신재순(申在淳), 전우병사 조원석(趙元錫) 등의 죄상을 보고하고 그 처벌을 건의하였다.
그뒤 집의를 거쳐 1852년(철종 3)에 대사간이 되었으며, 1859년에는 이조참의를 지내고 이어서 참판을 지냈다.
저서로는 『석거집』이 있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哲宗實錄
增補文獻備考
國朝榜目
哲宗實錄
增補文獻備考
國朝榜目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대표명 | 김기찬(金基纘) |
성명 | 김기찬(金基纘) |
성명 : "김기찬(金基纘)"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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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