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치구(閔致久)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BFCCE58AD6CB1795X0 |
시호(諡號) | 효헌(孝獻) |
생년 | 1795(정조 19) |
졸년 | 1874(고종 1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여흥(驪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민단현(閔端顯) |
[관련정보]
[상세내용]
민치구(閔致久)
1795년(정조 19)∼1874년(고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민단현(閔端顯)의 아들이며, 민승호(閔升鎬)의 아버지이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장인이다. 고종의 외할아버지이다.
1863년(고종 즉위) 공조참의가 되고, 1864년 공조판서에 특진하여, 이듬해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가 되었다.
1867년 청주목사가 된 뒤 이듬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역임한 뒤 1869년 다시 공조판서를 지내고, 판돈녕부사로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민단현(閔端顯)의 아들이며, 민승호(閔升鎬)의 아버지이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장인이다. 고종의 외할아버지이다.
1863년(고종 즉위) 공조참의가 되고, 1864년 공조판서에 특진하여, 이듬해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가 되었다.
1867년 청주목사가 된 뒤 이듬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역임한 뒤 1869년 다시 공조판서를 지내고, 판돈녕부사로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참고문헌]
日省錄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淸選考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淸選考
[집필자]
최용(崔墉)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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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