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연(李穆淵)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AA9C5F0B1785X0 |
자(字) | 백춘(伯春) |
호(號) | 소소(笑笑) |
생년 | 1785(정조 9) |
졸년 | 1854(철종 5)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의상(李義常) |

[상세내용]
이목연(李穆淵)
1785년(정조 9)∼1854년(철종 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춘(伯春), 호는 소소(笑笑). 이의상(李義常)의 아들이다.
1821년(순조 2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그뒤 지평‧이조참의‧이조참판‧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
1843년(헌종 9)에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대사헌‧호조판서를 거쳐 1847년 광주유수(廣州留守)로 있을 때, 전날 대사헌으로서 조병현(趙秉鉉)의 탐학과 농권(弄權)을 탄핵한 소장(疏章)에 과격한 문구가 들어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전라도 임자도(荏子島) 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그뒤 전라감사‧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821년(순조 2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그뒤 지평‧이조참의‧이조참판‧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
1843년(헌종 9)에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대사헌‧호조판서를 거쳐 1847년 광주유수(廣州留守)로 있을 때, 전날 대사헌으로서 조병현(趙秉鉉)의 탐학과 농권(弄權)을 탄핵한 소장(疏章)에 과격한 문구가 들어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전라도 임자도(荏子島) 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그뒤 전라감사‧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哲宗實錄
國朝榜目
鍾山集
哲宗實錄
國朝榜目
鍾山集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대표명 | 이목연(李穆淵) |
성명 | 이목연(李穆淵) |
성명 : "이목연(李穆淵)"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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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