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광문(李光文)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74AD11BB38B1778X0
자(字)경박(景博)
호(號)소화(小華)
시호(諡號)문간(文簡)
생년1778(정조 2)
졸년1838(헌종 4)
시대조선후기
본관우봉(牛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채(李采)
증조부이재(李縡)

[상세내용]

이광문(李光文)
1778년(정조 2)∼1838년(헌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경박(景博), 호는 소화(小華). 이재(李縡)의 증손이며, 호조참판 이채(李采)의 아들이다.

1801년(순조 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809년에 천거로 승정원주서예문관검열이 되고, 이어 전라감사 등 내외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일찍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자 기민들을 요령 있게 잘 구호하였고, 백성에게 농사를 장려하고 선비에게 책읽기를 권장하는 것이 지방관의 상례를 훨씬 뛰어넘는 바가 있었다.

천자(天資)가 화후(和厚)하고, 의도(儀度)가 장중하여 말과 웃음이 적었다. 입으로는 돈을 말하지 않고, 재물은 의례가 아닌 것은 받지 않았으며, 연경(燕京)에 두번이나 다녀왔건만 값진 물건은 하나도 가져온 것이 없었다.

벼슬이 판서에 이르러서도 생활은 지극히 검소하여 의복과 음식이 한사(寒士)와 다를 바 없었다. 평생 물건을 놓고 남과 다툰 일이 없었으므로, 비록 높은 지위에 올라도 사람들이 시기하지 않았으며, 세상살이에 결점이 없어 탁연히 한 시대의 완인(完人)이 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國朝人物考
梅山集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