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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창(梁宗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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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창보(昌甫)
호(號)매포(梅圃)
생년1767(영조 43)
졸년1821(순조 21)
시대조선후기
본관제주(濟州)
활동분야기타
출생지제주도 제주시(濟州市) 화북동(禾北洞)

[상세내용]

양종창(梁宗昌)
1767년(영조 43)∼1821년(순조 21). 조선 후기 문화재보호가. 자는 창보(昌甫)이고, 호는 매포(梅圃)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오늘날 제주도 제주시(濟州市) 화북동(禾北洞)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주가 남달랐고, 마음 씀씀이 또한 넓었다.제주도에는 삼사석(三射石)이 있다. 제주도의 시조 삼신인(三神人) 삼을나(三乙那) 즉 양을나(楊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후, 자신들이 살아갈 도읍을 정하기 위해 한라산(漢拏山)의 쌀손장오리[矢射岳]에서 화살을 쏘았는데, 삼사석은 세 사람이 쏜 화살이 날아가 박힌 돌을 가리키는 것이다.

1735년(영조 11) 제주목사(濟州牧使) 김정(金政)이 그들의 활솜씨를 기리기 위해 제주시 화북1동 1830번지에 높이 113cm, 너비 43cm, 두께 18cm의 비석을 세웠다. 그 후 1813년(순조 13) 양을나의 후손인 양종창(梁宗昌)은 지름 55cm 크기의 현무암 2개로 되어 있는 삼사석을 길이 보존하기 위해서는 석실(石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높이 149cm, 가로 101cm, 세로 67cm의 석판을 세워두었다. 현재의 모습은 1930년 고을나의 후손 고한룡(高漢龍)고대길(高大吉)고영경(高永炅) 등이 개보수를 한 것이다.

삼사석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제주도 기념물 제4호로까지 지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양종창의 공로가 크다. 자료에 따라 1735년(영조 11)에 그가 석실을 세운 것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으나, 그의 생년이 1767년(영조 43)이기 때문에 1813년(순조 13) 석실을 세웠다는 기록 쪽이 신빙성을 가진다.

[참고문헌]

제주사인명사전
증보제주문화재
증보탐라지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